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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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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우라 작성일18-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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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통찰력은 좌절을 더 높은 소망과 새로운 결의로 전환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196 :3.26]"
Religious insight possesses the power of turning defeat into higher desires and new determinations

 

좋은 글이라서 본문을 찾아보니 아래와 같이 되어 있네요.

 

196 :3.26
(2096-5)
종교적 통찰력은 패배를 더 높은 욕망과 새로운 결의로 전환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랑은 우주 상승 시에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동기이다. 그러나 진리(眞), 아름다움(美), 선(善)을 벗어 버린 사랑은 단지 하나의 정서이며, 철학적 왜곡, 심리적 착각, 영적 기만이다. 사랑은 모론시아와 영적 진보의 연속되는 차원들에서 항상 다시 정의(定意)되어야 한다.


그런데 종교적 통찰력과 진미선을 벗어버린 사랑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잘 해석이 안되네요. 통찰력은 깨달음인데, 갑자기 사랑이 하나의 정서이고 철학적 왜곡이고 심리적 착각이라니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요. 

댓글목록

구름가듯님의 댓글

구름가듯 작성일

196편 글은 책을 마무리하는 의미도 들어있어서, 간단하게 소견을 말하기가 주저됩니다만, 통찰력은 쉬운 말로 하면 깨달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런 깨달음은 철학이나 지성이나 지혜에서 얻을 수도 있으나 이 문장에서 말하는 종교를 통하여 얻는 깨달음과는 좀 다르다고 봅니다.

종교에서 신앙이나 믿음을 떠올리고 한편 진리를 깨달음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만, 유란시아 책에서는 진리에는 아름다움과 선함이 함께 있고, 그 모두가 다 들어있는 개념으로 신성한 사랑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사랑이라고 책의 1부에서 여러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이 문단을 해석하면, 하느님의 신성한 사랑 곧 진미선이 들어있지 않는 사랑은, 단지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인간의 감정적 반응이라는 의미 겠지요.

그러한 세속적인 사랑을 추구하거나 삶의 목표로 삼는 것이 왜곡이고, 착각이고, 기만이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유란시아 책이 계시라고 하는 의미는 어쩌면, 새롭고 신성한 사랑의 의미를 계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시간이 되신다면 196편의 3장 '종교의 최극위'를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종교적 통찰력이나 나아가 종교가 추구하는 궁극의 역활과 목표를 집약한 것이라서, 내용은 좀 딱딱하지만 새로운 계시로 제시되는 글들입니다.

우선 아래 문장만을 참고하신다고 해도, 종교적 통찰력이 사랑과 밀접한 관계임을 알 수 잆습니다.
196 :3.21
"하느님은 단순히 사람의 이상주의의 창안이 아니다; 그는 모든 이러한 초(超)동물적인 통찰력들과 가치들의 바로 그 근원이다. 하느님은 인간들의 진, 선, 미의 개념을 통합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가설이 아니다; 그는 그로부터 모든 이들 우주 현시활동들이 기원된 사랑의 개인성이다. 인간 세상의 진리(眞), 아름다움(美), 선(善)은 파라다이스의 실체들을 향하여 상승하는 필사자들의 체험의 증가하는 영성(靈性)에 의해 통합된다. 진리(眞), 아름다움(美), 선(善)의 합일은 오로지 하느님을-아는 개인성의 영적 체험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196편은 책에서 이해가 쉽지 않는 글 중의 하나 입니다. 계시자들도 그렇고 많은 독자들도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는 것이, 계시를 이해하는 데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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