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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지혜-인생은 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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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세이버 작성일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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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고해라는 사실은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해하는 진리입니다. 세상에 고통이 없다면 세상이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고통이 왜 존재해야만 하는지 그게 없으면 안되는 것인지 그 본질은 정확히 모릅니다.

 

아무리 행복한 사람도 고통을 피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고통이 전혀 없는 삶을 보장받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도 고통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불편이 자라나서 고통이 되는데 어떤 불편도 느끼지 않는다면, 더 이상 생명체가 아니겠지요.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고통은 사람마다 다르고 너무나 복잡해서 단순히 감정이나 느낌만으로 고통을 원인으로 분석하고 정의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괴롭다, 힘들다, 안타깝다, 슬프다, 아프다 말할 수 있는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현상에서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은 과학적이나 논리적으로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고통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지혜롭게 다룰 수는 있는 것이지요.

문제는 종교에 있습니다. 종교는 이러한 과학적인 분석과 심리적인 접근을 원천적으로 부인하면서, 무조건적인 해법을 강요합니다. 소위 믿음이라는 수단을 깅력하게 제시하면서, 믿음만이 해법을 소유하는 유일한 첫걸음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믿음에 이성과 지성을 동원하면, 믿음을 깎아내리는 허약한 모습이라고 오히려 비난하기도 합니다.

고통이 행복과 대칭되는 것이라서 필요악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런 궤변들은 기쁨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한 번도 제대로 체험하지 못한 불행한 사람들이 무기력하게 외치는 논리입니다. 그런 궤변을 이용하는 종교도 있고요.

고통이 없다면, 그 현상을 일으키는 슬픔, 분노, 미움과 같은 부정적 감각이 없을 것이고 육체적 자극도 없으니 고통과 괴로움의 현상을 다루고 해결하는 의사 변호사 판사 같은 수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입니다. 행복이 완성되는 미래는 그럴 것입니다. 심하게 말해서 고통의 현상을 제거하는 일은, 과학이나 의학의 발달로 순식간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지요.

미국의 어느 신학자는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이해하고 수용하게 될 때, 삶의 문제에 대해 해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삶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다."라고 말합니다. 그 해답에 대한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울수록 사람은 삶이 고해라는 진리에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포기하는 삶을 사는 것이지요.

그러한 삶의 포기자를 구원이라는 미명 아래, 착취하는 것이 종교이기도 하고요. 깨어난다는 것은 삶의 고통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으면서 기쁨을 맛보고 결국에는 삶의 이상을 성취하는 것이지요. 진리는 종교에 있기보다는, 오히려 고통의 본질을 이해하고 정복하는, 세상 모든 것을 스스로 자각하려는 의식과 실천 안에서 드러날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길손님의 댓글

길손 작성일

현실을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야만 한다는 의식에서는, 철학자의 지혜와 깨달음은 소중한 가르침이고 반드시 우리 자신을 새롭게 깨우는 도구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삶과 존재의 본질을 발견하여 길을 제시하는 철학적 결론을 받아들이면서, 현실을 단순하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잘못된 길로 벗어나게 됩니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미처 모르고, 철학적 결론 안에서 삶을 단순히 먹고 마시고 생각하며 열심히 재밌게 잘 살면 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현실을 분석하고 정의하고 모든 것을 통달해도, 존재의 이유는 밝힐 수 없습니다. 고통과 기쁨이 존재하는 이유와 운명도 지능의 한계를 벗어나서 이해할 방법은 없습니다.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과 한편 현실의 모든 것은 불멸의 법칙 아래에서 존재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냉엄한 사실에서, 불멸은 도전하기 힘든 이야기이지만, 인간을 위한 이야기라고 봐야겠지요. 그러한 불멸에 관한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계시이고, 추론이라면 인간의 작품이겠지요.

유란시아 책이 선과 악의 본질, 현실의 모든 것을 불멸의 운명 안에서 총체적으로 살피도록 밝히고 있다는 점과 그것이 각자의 의식에서 사실로 증명된다는 점에서 계시임이 밝혀지는 것이지요. 책을 읽고 사랑한다고 해서 모두 계시의 사실을 인정하고 체험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책에 담긴 새로운 지식이나 지혜를 계시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이 있을 것입니다. 마치 철학적 삶의 본질을 착각하여 힘들고 복잡한 삶의 현실을 단순하게 착각하는 의식의 마비현상을 겪는 경우와 같습니다. 참된 진리에 갈증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목차만 차분하게 살펴본다고 해도, 고통과 행복에 대한 근원이 있다는 진실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철학하시는 분들이 종교에 대해 편견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인간이 추구하는 진리를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판단하면, 성취되어야 할 참된 진리는 의미도 없고 실현도 불가능합니다.

종교에 대한 편견에는 타당한 근거와 증명이 많기 떄문에 그런 판단이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만, 이 책에 들어있는 101편 "종교의 실제 본성"을 한번 진지하게 읽어보신다면 아마 종교에 대한 그동안의 편견이 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보의 홍수에 살아가는 이 시대에서는, 계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편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는 계시를 악용하는 불완전한 사람이 많기 때문인데, 그런 일방적인 저마다의 목소리로 계시의 본질을 판단하시면 안 됩니다.

유란시아 계시도 다른 사람이 들려주고 해석하는 의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현실을 통하여 확인하고 체험하는 진리가 살아있는 불멸의 진리인 것입니다. 그런 원리를 책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토파즈님의 댓글

토파즈 작성일

고통의 근원은 죽음이라는 한계 때문이에요. 한계의 본질, 그 의미를 알고 극복하는 게 진리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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