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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유란시아의 우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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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새 작성일19-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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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 우주관은 불교의 세계관과는 아무 공통점도 없고, 견주어 말할 것도 없다. 열반으로 말하는 불교의 경지를 유란시아에서 말하는 시공간을 벗어나는 하보나로 말하는 분의 글을 읽은 적이 있지만, 하보나가 절대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를 미처 몰라서, 겉모습만 가지고 우주를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삼위일체나 절대자와의 연결성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우주는 단지 의식이나 깨달음이나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수많은 차원의 시간-공간의 조각들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이해에서는 우주가 7개의 차원이건 7,000개의 차원이건 10억의 차원이건 아니면 무량의 차원이건 규모가 어떠하던 아무 차이도 의미도 없다. 각 우주나 세계가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정교한지, 얼마나 놀라운지 배우고 깨닫는 것이, 단지 논리적, 지적 확대를 즐기고, 의식의 확장을 추구하는 지식과 지혜의 향연장에 불과할 수 있다.

우리의 감각과 마음과 생각과 의식을 아무리 확장해도, 인간은 초인간 존재들이나 천사들과는 견줄 수가 없다. 만약 견줄 수 있다면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교제를 나누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인간으로 살고 있으면서 그러한 교제를 했다는 존재는 있을리가 없다. 그럴 수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초월적 차원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초월적 감각이나 능력이 얼마나 낮은 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그러한 수많은 세계의 존재들과 교제하고 자유롭게 나눈 대화를 경전에 기록했다고 하지만, 대화의 내용과 주제가 인간과 관련된 현상계의 원인과 모습을 진술하는 것이고 궁극의 목적도 영원한 행복이 끝이라는 점에서,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 후대의 추종자들이 기록한 글이라고 여겨진다.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이 행복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영원한 행복이 왜 필요한 지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존재의 참된 의미와 목적을, 존재 이후의 상태를 기반으로 찾으려고 하니, 참된 진리에 이르는 길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는 셈이다. 근원자에게 그 목적을 찾아야 마땅하다.

불교의 참된 진리를 바탕으로 우주 아버지의 실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불교가 중흥을 맞이할 수 있다고 유란시아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불교가 새롭게 깨어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것과 같다. 초인간인 계시자들이 말하는 무슨 근거가 있겠지만, 갇혀있는 지금의 진리와 가르침으로는 다가오는 시대에서 불교는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점점 힘을 잃을 것은 틀림없다.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유란시아 책을 보면, 불교에 대한 이야기가 계시되는데 부처님이 하느님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면서 인간이 다가갈 수 있는 정점에 닿은 것이라서, 그 높은 경지가 매우 놀랍다고 말합니다. 부처님도 하느님을 아는데, 실패했는데 그 교리를 진리로 받들려는 후대의 사람들에게  하느님 의식을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수천년 전의 고통이 범람했던 시대적 배경과 고도의 물질 문명 속에서 행복을 누리는 현시대에서, 교리로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삶의 생생한 현실에 과감하게 도전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결국에는 하느님 의식을 깨달을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이러한 변화가 어쩌면 여러 세대를 거쳐야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시대가 오기 까지는 어쩔 수없이 공허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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