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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은 필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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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리상자 작성일2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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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 책에서 선과 악에 대한 것을 찾아보았는데 이 주제가 어디 있는지 잘 눈에 띄지 않네요.

선이 존재하려면 상대적으로 악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인지, 왜 악을 행하면서 세상을 어둡게 만들고 있는지, 하나님이 꼭 그래야만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하나님을 절대선이라고 설명하는데 악이 없어도 세상은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 악은 하나님이 만든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인지요

만약 하나님의 선이 닿을 수 없는 다른 악의 세상이 있다면 그 세상의 근원자는 하나님과 동등한 절대악이라고 봐야 하는 것일까요?

악한 사람들이 특징은 힘으로 남을 공격하여 강탈하고 자기 마음대로 자신의 기쁨만을 누리는 것인데, 악의 근원을 선택한다면 그러한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듭니다.

악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있을 것 같은데 절대악을 유란시아에서는 어떻게 설명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댓글목록

갈급한심령20대님의 댓글

갈급한심령20대 작성일

저 또한 많이 궁금해하던 철학적 명제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더 궁금한 진리가 많았는데 유란시아서를 읽으면 전부 해소됩니다.
2부 53편~54편의 루시퍼와 사탄 그리고 아담의 일화를 보시면 죄와 악에 대하여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모든 내용을 읽을 때 비로소 많은 궁금증들이 해소 될 것입니다.
1부부터 4부까지 순서대로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1부는 중앙우주 2부는 지역우주 3부는 유란시아 4부는 예수님의 생애로 점점 나 자신과 가까운 내용을 배우게 됩니다. 복잡하거나 지구,나 자신과 관련 없다고 생각하는 내용은 과감하게 훑으면서 읽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해도 흥미롭고 읽게 될 진리가 넘칩니다. 그렇게 읽고나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복잡했던 내용들도 읽어보는게 좋을 것입니다.

귀납적으로 말하자면 지구가 혼란스럽게 된 이유로 첫번째로 지구의 행성 영주가 루시퍼의 반역에 가담했습니다. 두번째로 아담과 이브가 지구 인간들에게 영적으로 뛰어난 신체를 증여하는 것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선천적인 저속한 본능들 때문에 악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번식욕 이기심같은 것들이요.

하지만 악과 죄는 엄연히 다릅니다. 악은 모르고 행하는 것이며 죄는 고의로 악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로 우리들에게 생각 조절자(하느님의 단편)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데부분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속한 육체와 신성한 생각 조절자의 모순으로 인해 큰 괴로움을 느끼죠.

또한 지구 인간들의 사건에 영적 존재들은 큰 개입을 못한다고 합니다.

만약 실존적으로 고통스러운 세상을 악이라고 지칭하셨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고통을 겪지 않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고통은 성장의 원동력입니다.
23:2:5 창조주는 모든 세계를 진실 그대로의 파라다이스로 만들 힘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성격의 개발이, 필요성이라는 모루와 고통이라는 망치 사이에서 담금질로 만들어질 수 밖에 없는 시공간에서, 그러한 에덴동산은, 창조주가 너희 세계에서 분명하게 이루려는, 그 강력하고 고귀하고 체험으로 획득되는 인간의 위대한 성격의 개발에 아무 기여도 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의 욕망과 슬픔은, 시련과 실망은, 완전한 중앙우주의 최극 목적을 위한 경이롭고 무한한 활력을 이루고 만드는 요소로 물질 세상에 펼쳐진 신성한 계획의 일부이다.

밑의 구절들은 질문자의 질문에 대한 자세한 답변이 될 것입니다.

54:0:1진화하는 사람은 악, 잘못, 죄, 그리고 사악한 불의의 의미들을 파악하고 의의(意義)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발견한다. 사람은 대비가 되는 완전과 불완전이 잠재적 악을 산출한다는 것; 상반되는 진리와 허위가 혼란을 일으키는 잘못을 창조한다는 것; 자유의지 선택의 신성한 자질이 죄와 정의(正義)의 서로 갈라지는 영역 안에서 결국 생겨난다는 것; 신성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가 하느님의 왕국으로 인도한다는 것과 대비되는 것으로 그것을 계속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사악한 불의의 권역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감지하는 데에 느리다.

54:0.2 하느님들은 악을 창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죄와 반역을 허용하지도 않는다. 잠재적 악(惡)은 완전 의미들과 가치들의 차이 있는 차원들을 포옹하는 우주 안에서의 시간-실존함 이다. 죄(罪)는 불완전한 존재들이 선과 악의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자질로서 부여받은 모든 영역에 잠재한다. 진리와 허구, 사실과 거짓말의 바로 그 상반되는 현존이 잘못의 잠재성을 이룬다. 악에 대한 고의적인 선택이 죄를 가져오며; 진리에 대한 고의적 거부가 잘못이다; 죄와 잘못에 대한 끈질긴 추구가 사악한 불의이다.

54:3:0진화 세계들의 도덕적 의지 창조체들은 모든-지혜이신 창조자들이 왜 악과 죄를 허용하는가와 같은 생각없는 질문으로 늘 시달린다. 그들은 창조체가 참으로 자유롭게 되려고 한다면 두 가지 모두가 필연적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서 실패하는 것이다. 진화하는 사람이나 매우 아름다운 천사의 자유 의지는 단순한 철학적 개념, 어떤 상징적 이상이 아니다. 선이나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의 능력은 하나의 우주 실체이다. 선택에 대한 이러한 자유로움은 최극 통치자들의 자질이며, 그들은 어떤 존재나 혹은 존재들의 집단에게도 넓은 우주 안에 있는 단 하나의 개인성에게서 신성하게 증여된 이 자유로움을 박탈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설사 빗나가고 무지한 존재들이 이러한 개인적 자유로움을 사칭하는 즐거움에 빠지는 그러한 만족을 준다 해도 자유로움을 박탈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54:4:1놀라시아덱이라는 별자리에서 설명하기에 다소 어려운 또 하나의 문제는, 체포되고 억류되며 재판을 받기 전까지 루시퍼와 사탄 그리고 몰락한 영주들이 해독을 끼치도록 허용되었던 이유들에 관한 것이다.

54:4.2 자녀들을 낳고 키운 부모들은 창조자-아버지인 미가엘이 자기 자신의 아들들을 책망하고 파괴시키는 일을 왜 주저하는지를 더 잘 납득할 것이다. 방탕한 아들에 대한 예수의 이야기는 사랑 넘치는 아버지가 잘못을 저지르는 자녀의 회개를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54:4.3 악을-행하는 창조체가 그릇된 일을 행하기─죄를 짓기─를 실재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 자유-의지성의 사실을 입증하며 만일 연장된 자비가 뉘우침과 회복을 이끌어낸다면 공의(公義) 실행에 있어서 그 어떤 지연도 충분하게 정당화한다.

54:6:5그리고 반역이라는 죄에 변함없이 동반하는 이들 시련들, 지연들 그리고 실망에는 보상이 있다.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루시퍼 반역에 대한 가치 있는 많은 반향들 중에서, 나는 오직 필사자 상승자들의 향상된 생애에만 주의를 집중할 것인데, 그들은 죄의 궤변에 대항함으로써 장차 막강한 메신저들, 나와 같은 계층에서의 동료가 되는 줄에 자리를 차지했다. 악한 에피소드를 견디었던 모든 존재는, 그로써 자신의 행정-관리적 지위를 즉각적으로 향상시켰으며 자신의 영적 가치를 강화시켰다.

53:8:1 루시퍼와 사탄은 지구에서의 미가엘의 증여 임무가 완수될 때까지 자유롭게 배회하였다.
53:8:3 미가엘의 증여(예수님)는 행성영주들이 배신한 행성들을 제외한 모든 사타니아에서 루시퍼 반란을 종료시켰다.
53:8:9 일반적으로 연약하고 방종하는 필사자들이 악마들과 귀신들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상상할 때는, 그들은 단지 그들 자신의 선천적인 저속한 성향에 지배받고, 그들 자신의 자연본성적 성향에 이끌리는 것뿐이다. 칼라가스티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로 상당히 무력화되었다.
54:6:7 시간의 흐름은 루시퍼의 어리석은 행동으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필연적인 선을 증진시켜 왔으며;(생략) 사타니아 반역자들을 체포하여 선고를 내리는 곳을 지연시키는 추가적인 많은 이유들을 차치하고, 이 한 가지 소득은 왜 이 죄인들이 더 빨리 억류되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그들이 선고를 받고 궤멸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54:6:8 멀리 보지 못하고 시간에 매여 있는 필사자 지능체들은 우주 관련사에 대해 선견지명이 있는, 모든 지혜이신 행정 관리자들의 시간 지연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54:6:9이들 문제에 관한 인간 사고의 한 가지 잘못은 만일 죄가 그들의 세계를 저주하지 않았다면 모든 진화적 필사자들이 파라다이스 생애에 들어가기를 선택하였을 것이라는 관념에 있다.

53:4:5 루시퍼는 공의의 자비로운 연기 전체를, 반란을 중지시키기 위한 파라다이스 아들들의 무능력에 대한 증거로 간주하였다. 우주의 무능력에 대한 명확한 증거로서 아무 행동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사실로서 지적하였다.

갈급한심령20대님의 댓글

갈급한심령20대 작성일

우주적으로 봤을 때 절대 악은 반역죄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하느님깨서는 사랑으로서 자비를 한 없이 베푸십니다.

악을 행함으로서 좀 더 편하고 이익을 행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물질주의자들이 생각하는거죠. 하느님도 없고 이번 생이 끝이라면 그게 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느님을 믿게 되면 저지를 수 없게 되죠.

또한 유란시아에서 죄를 행하며 얻을 유익은 정말 보잘 것 없습니다. 쾌락은 도파민이 분비되게 만들 뿐이죠. 그런 유익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마약과 같이 호르몬을 자극하는 약물들에 귀결되며 무상합니다.

죄는 힘든 길을 걷게 하며 죄의 값은 사망이며 사망은 필멸을 뜻합니다. 우주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영구 삭제됩니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중에 큰 죄는 찾기 힘들 것입니다. 저급한 육체를 가진 한계로부터의 악이 행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스케일이 작습니다.

절대선은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하느님과 같이 완전해지도록 분투하는 것 같습니다.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선악 문제는 무신론자였던 어느 저명인사가 천주교 신부에게 진지하게 물었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단언하기가 어렵지만, 초인간 존재의 답변들이 유란시아 책에 있어서 많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이미 위에서 자세하게 그 내용을 소개하였으니 특별히 더할 것은 없습니다만, 지적하신 것처럼 선과 악은 나란히 비교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은 실체라서 항상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지만, 악은 그림자라서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지요. 달리 말하면, 악이 없어도 누구나 선을 창조하고 공유하고 나눌 수 있지만, 악은 선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구분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악은 선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따라서 악에는 고의성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악을 고의적으로 행한다면, 스스로 선을 부인하고 내리는 결정이라서 죄가 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즘 벌어지는 악은 고의적으로 남을 괴롭히는 것을 즐기는 자의적인 선택이 점점 늘어나서 문제가 심각하고, 사회적 질병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이 나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에 어는 분이, 악에 고통받는 것은 그만큼 아직 이루지 못한 선을 뜨겁게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그렇게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선이, 새로운 환경을 만나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계기를 만나면, 그동안 겪었던 혹독한 환경에서의 모든 악의 고통은 사라질 것입니다.

선악에 대해 예수님이 말씀하신 132편의 글이 있습니다.
http://www.urantia.or.kr/bbs/board.php?bo_table=growing&wr_id=31

토파즈님의 댓글

토파즈 작성일

악은 감추어진 선의 힘을 확인하는 기회이고, 새로운 선의 힘을 만들 수 있는 도전과 도약이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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