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최근 게시글      최근 코멘트

침묵에 대한 오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코너킥 작성일20-12-21

본문

가끔 듣는 말 중에서 "침묵은 하나님의 언어"라는 말이 있다. 테레사 수녀의 말로 인용되곤 하지만 침묵은 초기 로마 가톨릭의 수도원에서 유래된 관상 기도의 핵심이 되는 수행의 하나이다. 이 밖에도 침묵의 중요성을 전하는 말은 아주 많다.

관상 기도​(Centering Prayer)는 자연스럽게 마음을 집중시키는 향심 기도로 말하는 경우도 있고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구심 기도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향심 기도는 수사들이 동양의 명상 기법을 도입하여 치유 기법으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하고, 구심 기도는 감사의 마음으로 집중하며 하느님의 충만함을 받는 기법으로 활용된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도 현대식 기독교는 일반 기도와 더불어 이 수도원에서 유래된 특별한 기도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예수님의 구원론이 핵심 교리인 일반 개신교에서는 관상 기도가 개인의 신비주의적 접근으로 보면서 그 위험을 경계하지만, 그 중에서 구심 기도는 보통 묵상 기도로 정의하면서 하나님 내재에 다가가는 믿음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묵상 기도의 침묵은, 무념의 침묵과 물론 다르다. 만약 무념의 침묵이라면, 그것이 관상 기도이건 일반 기도이건 모두 위험하다. 진리일 수가 없고, 악이 아닐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침묵이 하느님의 언어라는 말 자체가 문제가 심각하다. 인간이 하느님을 정의한다는 발상이나 말은 신성 모독인데,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하느님의 신성한 진리가 실체적 사실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다는 반증일 것이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묘사하거나 전달할 수 없는 신성하고 엄청난 사실이 있다. 그래서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침묵은 폭발할 수 없는 신성한 혹은 엄청난 에너지가 요동치고 있는 침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언어라고 보통 말하는 침묵은 조용히 입을 다물라는 정중한 요구이거나, 아니면 스스로 입을 다물고 있는 자신을 변명하고 자기 얼굴에 금칠하는 말일 것이다. 듣기 싫은 말이나 시끄러운 말을 멈추게 하려는 의도에서, 혹은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려는 생각에서는, 침묵이 차라리 금이라 말할 수도 있다.

하느님이 영원하고 무한한 실체임을 배우고 깨닫고 실감하려는 사람에게, 조용한 침묵이 하느님의 언어라고 한다면, 경악스러운 말이 될것이다. 하느님을 알고자 원한다면 이 말에는 진리를 파괴하고 한편으로는 악의 함정으로 이끄는 함정이 있음을 경계해야만 한다.

유란시아 책에서 하느님은 사랑이라고 계시하고 있다. 사랑은 침묵할 수 없고, 침묵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미처 표현 못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마음이나 생각이나 의식에서나 역동성이 없는 사랑은 성립될 수가 없다. 역동성이 없는 사랑은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환상적인 감상에서 스스로 만든 환각이다.

사랑 가득한 ​어떤 부모가 침묵으로 자녀를 키운다면, 그 결과가 어찌될 지 안 봐도 뻔하다.

대체로 침묵이 악을 거부하거나 정지시킬 수는 있지만, 선을 행하는 것은 아니다. 진미선은 정지된 잠정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것이다. 난무하는 고함과 비난과 욕설만을 보고 있다면, 그래서 ​말이 악의 근원이라 여긴다면, 그리고 악을 감당하기 힘들어 탈출하고 싶다면, 침묵을 하느님의 언어라고 주장하고 강요하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악은 참된 실체가 아니다. 참된 실체가 있는 곳을 알아야 한다.

악에서 벗어나는 것은 악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악이 없는 밝은 곳으로 나오는 것이다. 단지 나오면 된다. 침묵을 강요하거나 침묵을 지키려고 애쓰지 말고, 즐겁고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를 부르면 된다.

 

어둠에서 탈출하는 것은 큰 노력과 시간이 걸리지만, 밝은 곳으로 나오는 것은 발걸음만 옮기면 즉시 이루어지는 쉬운 일이다. 때로는 단지 빛이 비치는 쪽으로 방향만 돌리면 된다.

침묵은 하느님의 언어라는 말이나 생각은 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세뇌시키는 효력을 끼치기도 한다. 침묵의 이유가 탈출, 해방, 위로, 평화라면 침묵은 항상 감옥, 속박, 고통, 혼란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소망이나 다가가려는 새로운 실체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고 단순히 침묵만 존재하는 한, 그 바탕에 있는 이유는 사라질 수가 없다.

참된 것을 말하고, 아름다운 것을 노래하고 선한 것을 기뻐할 때 사랑은 역동적이고 나날이 성정하는, 살아있는 에너지로 분출될 수 있다.  

 

침묵이 아니라 진미선이 외침이 온 우주에 넘쳐야 한다. 그래도 관상 기도를 하고 싶다면 온 우주에 넘칠 사랑의 에너지가 충만한지를 살피고 시작해야 할 것이다.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일반적으로 침묵이나 묵상으로 하는 기도는 대다수의 분들이 하는 기도입니다. 유란시아 책이나 실제 거의 모든 종교에서도 소리를 내기보다는 내면에서 나오는 기도가 참된 기도라고 말하고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느님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소리의 바탕에 있는 진심을 듣는다고 말합니다. 유란시아 책에서는 그 동기를 듣는다고 말하고 있고요.

관상 기도를 부정적으로 보는 분도 있지만, 실은 명상과 같은 것이라서 소망을 호소하기보다는 하느님과의 교제를 이루는 경배의 의미도 들어 있어서 실제로는 기도와 경배의 중간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종종 명상을 위해 조용한 곳을 찾으신 것을 보면, 기도와는 달리 침묵으로 이루어진 명상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봐야겠지요.

그처럼 하느님과 소통하거나 신성에 다가가려면 일상의 언어를 멈추고 온 마음을 기울이는 침묵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대화하려는 사람의 언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느님(과 관계를 가지는) 언어라고 말하는 것인데, 잡음을 반대하는 의미가 되면 오히려 성장과 관계를 가로막는 장애가 될 것입니다. 무작정 생각과 말을 중지하는 침묵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점점 퇴보시킬 것이나, 문제가 심각할 수 있습니다.

유성비님의 댓글

유성비 작성일

침묵 기도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중요한 기도 같아요. 검색하면 그 중요성도 설명되어 있고 왜 중요한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 널리 알려진 소중한 저술도 많이 있고요.

요약하면 4 단계로 구분되는데, 중요한 것이 묵상과 기도라고 소개합니다.

1. 진리의 말씀을 읽는 단계(Lectio)
2. 묵상 단계(Meditatio)
3. 기도 단계(Oratio)
4. 관상 단계(Contemplatio)

자유 게시판 목록

게시물 검색

(게시판 관리 방침에 따라 일부 글은 임시게시판으로 이동될 수 있습니다.)


재단소개 재단목적 문의 | 요청 개인정보취급 (웹관리자) : sysop@urantia.or.kr © URKA 상단으로
  모바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