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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현대 종교의 거짓-선과 악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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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디오니스 작성일21-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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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존재하지 않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사실들이 많고, 또한 하느님이 없으면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는 현상들도 너무나 많기 때문에,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의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어떤 한계에 부딪쳐 더 이상의 탈출구가 없을 때, 자신의 아니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야만 하는 절박함에서, 전능자로서 하느님을 믿고 그에게 의존하려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이유이건 초월적 하느님의 실존을 갈망할 때, 하느님을 알려는 의식이 싹트고 비로서 인간의 신앙과 종교의 토대가 되는 것이지요.

예전에 어느 재벌 총재가 하느님이 절대자이고 선하다면 이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하는, 무신론자들이 던지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신정론에서 말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고리타분한 질문이라서, 새삼스럽지도 않고 특별한 의미도 없는 질문이었지만 사업만 하다 보니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수없이 많은 인본주의적 철학자와 신학자와 자칭 현자들이 인간의 논리와 해석과 이론으로 하느님의 정당성을 평가하려고 별별 이야기를 했지만 그중에서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수천 년 전에 똑같은 질문을 했던 로마의 유명한 종교 지도자에게 해준 여러 이야기 중에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132:2.2
 
나의 형제여, 선(善)과 악(惡)이란 말은, 관찰 가능한 우주에 대하여 인간이 이해하고 있는 상대적 차원을 상징하는 단어에 불과하다. 만일 네가 윤리적으로 게으르고 사회적으로 무관심하면, 현재의 사회적 풍습들을 선에 대한 너의 기준으로 선택할 수도 있다. 만약 네가 영적으로 나태하고 도덕적으로 진보적이지 못하다면, 너는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종교적 실천 관행과 전통을 너의 선의 기준으로 삼아도 된다. 그러나 시간에서 생존하여 영원 안에서 창발 하는 혼은,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사람의 가슴 안에 거하도록 보내준 신성한 영에 의해 세운 영적 기준들에 대한 진정한 가치에 따라 그들이 결정 되는대로 그에 따라, 선과 악 사이에서 활력을 주는 그리고 개인적 선택을 내려야만 한다. 이러한 내주(內住)하는 영이 바로 개인성 생존의 기준인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한 진리나 창발 하는 혼이나 신성한 영은 유란시아 책을 읽으면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선과 악이란, 단지 상대적 차원을 상징하는 단어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인간은 알아야만 사랑할 수 있지만, 하느님은 사랑을 해야만 알 수 있는 분이라고 계시되고 있는데, 사랑은 설명이 되는 순간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 이와 비슷한 말이 우주 만물의 생동과 그 법을 설명하는 도덕경의 첫 문장에 나와 있지요.

엄밀하게 말한다면 왜 악인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자나 답변자나 하느님을 인간과 대비되는 존재로서 의식하는 무신론자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전능자이지만 모든 부탁을 들어주는 해결사가 되어야 한다면, 창조의 잘못과 실수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고, 모든 창조 행위는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의무만 있으니 그것은 창조가 아니겠지요.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이 질문은 21세기를 달리는 지금까지도 신정론, 신의론, 변신론 같은 여러 이름으로 계속 이야기되고 있지만, 점점 더 세속적인 이야기나 사고 놀이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그런 인간적 논리들은 전지나 전능이나 절대를 이해하거나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힘으로는 더 이상 헤어날 수 없는 그러한 처지에서 하느님이 꼭 있어야만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 곧 "영이 가난한 사람들"이 그 가능성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러한 갈망에서 그나마 하느님의 전능과 절대성을 사실적 실체로서 파악할 가능성이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동기로 하느님을 갈망하고 사랑하다 보면, 하느님이 살아있는 실체이며 사랑이 넘치는 우주 아버지라는 것을 비로소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체험으로 아는 것이고 체험을 설명하는 유일한 방법은 "해보면 안다"라는 말 외에는 사실 불가능 합니다.

신정론, 변신론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그럴듯한 해석 중에도 깨달음을 주는 글들이 많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100만 원이 급히 필요한 친구에게 90만 원을 주었을 때 선과 악의 상대성에 관한 해석입니다. 급한 줄 알면서도 부족하게 보태주어, 이제는 10만 원에 목숨 걸게 만드는 차라리 없으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거의 해결되고 있다는 기쁨을 안겨주는 눈물겨운 친구일 수도 있겠지요.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모자라는 10만 원에 의미를 평가하면 악이 될 것이고, 채워진 90만 원에 의미를 부여하면 선이 되는 것이지요.

10만 원이 모자라는 금액이 되면 악이고, 채워질 목표가 되면 선이 됩니다. 모자라는 금액이 되면 90만 원은 아쉬움과 원망의 바탕이 될 것이고, 채워질 목표가 되면, 그 90만 원은 고마움과 행복이 되어 든든한 기쁨의 바탕이 될 것입니다.

죄의식이나 회개 의식은 무엇을 해도 모자란다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다는 사실과 슬픔에서 자신과 세상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할 수 있고 양심이 아프고 죄의식으로 괴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한 그러한 죄의식이나 절망이나 후회는 인간이 기억하고 인간이 해결해야 할 것이지, 하느님이 기억하고 해결해야 할 것들이 아닙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고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으니 모자라는 그것을 붙들고 의미를 부여하고 한탄하고 자책하며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스스로 악에 머물겠으니 도와달라고 외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냥 그러한 잘못과 실수를 인간이 안 저지르면 됩니다. 모자라는 것을 보기 보다는, 성취했거나 성취해야할 것을 볼 수 있다면, 아마도 하느님을 믿는 참된 신앙을 가진 증거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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