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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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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길손 작성일17-12-15

본문

연말이 되면 금년 한 해는 무엇을 이루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이 스치게 됩니다. 산다는 것은 오늘과 내일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말하는 것이고, 존재한다는 것은 금년과 내년에 뭘 하고 있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지난 시간은 도움이 될지언정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몸이나 의식이 변화하지 않고 과거에 머물거나 정지되어 있다면, 살아있는 의미와 가치는 생각하기가 어렵지요. 고작 과거를 회상하며, 그에 기대어 산다는 것은 특별한 미래가 없다는 것이기도 하고요.

 

요즘은 과거를 후회하고, 회상하며, 뭔가 자랑하거나 들추는 분들이 많아 졌습니다. 밝은 미래를 말하는 분들은 종종 있지만, 물질이나 마음의 양적 증가를 외칠 뿐이고, 밝은 미래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게다가 과거 잘못을 고치자는 미명 아래, 보복으로 보이는 현실 문제만 말할 뿐, 실체적 미래는 없고, 미래에 대한 비전도 관심도 찾아보기가 힘들어요.

 

어쩌면 우리는,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세계의 흐름에서, 궤도 이탈한 비정상적인 사회인데도, 마치 지극히 정상적으로 여길 만큼 , 일반인의 감각이 무디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런 분위기에 무기력하게 휩쓸려서, 다가오는 시간을 습관처럼 맞이하지 말아야겠지요.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힘들고 부담되는 사회에서는,  현재의 즐거움과 현재의 역동성에만 관심을 가지도록 서로를 자극하고 한편 유혹당하면서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를 생각하는 대신에, 서로를 자랑해주고, 상대적인 승리감이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어서, 악을 찾아 비방해 가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지요. 일시적으로는 존재감을 위해서 상대적으로 타인을 비평할 수 있지만, 미래에 대한 소망이 중심이 되어야만 합니다.

현실을 객관적이고 부정적으로만 바라본다면, 혹시 우리는 근본적으로 열등민족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칠 정도입니다. 침략을 많이 당해서, 패배 의식에서 살다 보니 억압된 감정이 깔려있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지요. 안방에서 자기 자랑에 취해 있을 뿐, 당당하게 세계의 주역으로 나서질 못하는 것 같아요. 재외 한국인의 성공담을 보면, 모두가 열등한 것은 아닌데, 요즘은 대체로 수준 이하의 사람들이 지나치게 활개 치면서 사회가 혼탁해진 것 같기도 하고요.

 

어느 나라나 발전을 방해하거나 정체시키는 계층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나와 직접 관련이 없으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으려는 이기적 분위기가 점점 확산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무관심이 아름다운 세상을 침몰시키고, 인간 세상을 동물의 왕국으로 바뀌게 만들게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이 세상을 그렇게 만드는 주역의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미래를 생각하지 못한다면, 결국 공멸합니다. 나라를 구하면 영웅이라고 칭송을 받지만, 그것은 단지 생명을 구하는 것일 뿐, 미래를 향한 인간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북한 사람들을 보면, 핵무기로 국민의 생존을 보장하는 자를 민족의 영웅으로 받들고 있고, 우리 중에도 일부 공조하는 사람이 있고요.

 

단지 나라의 생존을 지키겠다며 핵무기를 만들어 가면서, 미래를 가꾸어갈 능력을 잠재우고, 사람들의 정상적인 이성과 감성을 마비시키는 지도자를 미치광이라고 욕하는 것은, 정상 사회에서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는 세계인의 눈에는 당연한 평가입니다. 그런 지도자 밑에서 생존이나 부지하려고, 인간의 고결함을 생각해 볼 능력을 스스로 포기한 채, 세뇌당하는 사람을 과연 위대한 민족이라고 여길 수 있을지요.

 

늘 발전적이고 새로운 이상을 꿈꾸며 살아가는 정상적인 외국인에게는, 한국인은 쉽게 다스릴 수 있는 열등한 민족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어느 일본 제국주의자가 예전에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이게 냉혹하고 객관적인 현실이고 우리의 진짜 모습일겁니다. 암튼 부끄러운 현실이지만, 현실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이 좋은 것만 있다면, 가상이나 꿈에서만 가능한 것이겠지요.

 

북한과는 달리, 우리는 첨단 기술, 우수한 문화, 뛰어난 지능을 그런대로 인정받고 있지만, 만약 예리한 판단력과 강인한 정신이 둔화되고 사라지고 있다면,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성이 있기 때문에, 북한과 마찬가지로 쉽게 세뇌당하고 선동에 끌려 이지력을 상실하는 사람들로 몰락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의식이 높아서 설마 그렇게 될 리가 없다고 자부하고 싶지만, 객관적이고 냉혹한 현실에서 본다면, 세계인이 바라보는 우리는 북한 주민들과 조금도 차이가 없을겁니다. 과거를 내세우며 그에 바탕을 둔 자신감은 어리석고 초라한 자만이고, 미래가 없는 판단력은 그나마의 성취마저 스스로 허무는 착각입니다.  

 

항상 내일에 소망을 품고, 미래를 실체적 목표로 삼고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나아가야만 합니다. 아름다운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새로운 꿈과 이상을 실체적 대상으로 지닐 수 있어야 하고, 선과 악에 대한 날카로운 판단력과 감각을 가져야 합니다.

 

두려움과 유혹과 화려한 망상으로 의식이 훈련되거나, 달콤한 악에 굴복하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하고 강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누구나 지니고 있는 진리에 대한 선천적인 의식을 깨우기만 하면 되는 일이지요.

그러나 이미 무감각에 빠진 일반 사람들은 저절로 깨어나기가 거의 힘듭니다. 의식을 깨우는 일은, 진리를 알고 있고 그것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나서서 도와주지 않고는, 어떤 동기를 부여하지 않고는, 그런 자극을 주는 봉사자가 없이는 힘듭니다. 그래서 유란시아가 동기로서 전해진 것이지요.

 

유란시아 책은 계시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깨어날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이자 동기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은 사람들이 나서서, 책에서 전하는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면 점점 힘든 세상이 됩니다. 계시가 내려온 이상, 인류에게 결코 영적 침체나 멸망이 닥치지는 않겠지만, 작은 공동체로서의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계시를 읽은 사람은, 세상의 악을 밝히면서 자기 존재감을 높여주는, 그러한 달콤한 말이나 감정적 충동에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막연하더라도 미래를 실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어야 하겠지요. 이것은 미래 의식을 가질 수 있다면, 저절로 생기는 최소한의 기본자세이고 반응일 것입니다.

 

세상을 비난하고 남의 결점을 부각시키면서 상대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 자세는, 패배 의식에 자신을 방어하는 자연스러운 본능입니다. 분노의 에너지도 슬픔과 좌절의 고통을 봉합하려는 비겁한 자기 속임수이고, 마찬가지로 패배 의식에서 나오는 반응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부정적인 행동의 도구로 진리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진리는 참된 것을 밝히는 것이지 악을 밝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런 태도는 오히려 진리 의식이 자라지 못하도록 내려 누르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진리를 억제하며, 상대적으로 악을 더욱 뚜렷하고 새롭게 만드는 셈이지요.

 

진리 의식이 사라지거나 깨어나지 못하면, 사람은 아픈 상처 때문에 위로를 찾아 헤매는, 동물적 생존 본능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상처 투성이의 의식에서, 다시 새롭게 진리 의식으로 깨어나도록 하는 것은, 사랑의 힘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세상을 비난하는 사람이나 악을 밝히는 사람이나, 무의식에 무기력과 열등감을 만든 어떤 절망과 슬픔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본능의 피해자가 된 것이지요.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그 어떠한 절망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도록, 새로운 미래가 있음을 사랑으로 일깨워야 하는데, 그것은 지혜나 가르침이 아니라, 오직 사랑으로만 시작될 수 있습니다.

 

참된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연장도 아니고, 역사나 현실에서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책에서 발견하도록 안내해야 합니다. 미래는 지금까지 체험한 적이 없었던 새로운 기쁨과 즐거움과 성취가 기다리는 곳임을 사랑으로 설득해야 합니다. 미래는 현재까지의 시간과 상관없는, 새로운 도전과 모험의 세상이라는, 책의 진리를 잘 안내해 주어야 합니다.

 

고통을 지닌 분들은, 밝은 현실의 모습과 참된 미래를 생생하게 그릴 수가 없기 때문에, 과거와 현실을 비난하고 세상과 남을 비평하며, 자신의 아픔을 스스로 달래려고, 격려와 공감을 구하고 서로 나누면서 서로서로 자신감을 회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서로 내면의 상처와 슬픔을 감싸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미래의 실체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현실 부정과 판단을 초월할 수 있는 참된 가치를 찾도록 같이 노력해야지요. 그것이 개인성에게만 나타나고 가능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감상이나 본능적으로 주고받는 것에 그친다면, 사회를 오히려 더 오염시킬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가장 헌신적이고 위대한 사랑이라고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모성애 조차도, 포유동물의 본능에서 시작된다는 진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는 자연적이고 강력하고 본능적인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원시 시대의 여인들로 하여금 수많은 생소한 상황들을 받아들이게 하였고 헤아릴 수 없는 어려움들을 견딜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강제적인 모성애는, 남자와의 모든 투쟁에 있어서 여자에게 항상 엄청난 불이익을 주는 감정적 방해 요소가 되었다. 그러한 경우에도, 인간 종족 속에 있는 어머니로서의 본능은 저항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야심과 이기주의 그리고 종교적 신념에 의해서 방해될 수도 있었다. [84:1.7]

 

사랑은 동물적인 사랑에서, 인간적인 사랑으로 다시 정의되어야만 합니다. 사랑을 본능적인 감정이나 정서로 반응하고 서로 나눈다면, 당장은 서로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지만, 결과적으로는 인성을 오염시키고 문명을 후퇴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당장 안타까운 마음에서, 모성애적 본능에서 동조해 주거나, 사기를 높여 주려고 무조건 공감하는 것은, 내면의 상처와 슬픔을 더 깊고 굳어지게 만들지요.  그런 본능적 사랑이 반복되면, 모두는 자신과 상대에게 내재된 신성한 에너지에서 점점 멀어지며, 끝내는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게 만들지요.

 

감정적 교류와 증폭은 일시적으로 위로와 평온의 에너지를 일으키지만, 그것은 참된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곧 좌절과 공허감으로 되돌아옵니다. 참된 사랑은 적극적이고 열렬한 감정적 반응이나 마음이 통하는 공감이 아니라, 그 어떤 감추어진 슬픔과 상처의 근원까지도 녹이는 것이에요. 참된 사랑은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려는 창조성이, 자신과 상대의 내면에서 무의식적으로 싹트게 만드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단지 실체적 느낌으로 서로 주고받는, 시간 속에서 사라지는 에너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편안한 느낌과 행복한 감정에 머무는 것을 뛰어넘고, 그 상태를 초월해야만 합니다. 본능적 사랑은 지성이나 마음에서 나오는 감정과 감성이지만, 인간적 사랑은 그 감정이 생성되는 바탕 의식을 바꾸어주는 새로운 에너지예요.

인간의 사랑은 맑은 정신과 새로운 혼으로 태어나는 신성한 에너지가 충만해지는 것이어서, 그 어떤 악이나 어둠도 뚫고 나갈 새로운 힘과 자유가 솟아나는 것입니다.


종교적 통찰력은 패배를 더 높은 욕망과 새로운 결의로 전환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랑은 우주 상승 시에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동기이다. 그러나 진리(眞), 아름다움(美), 선(善)을 벗어 버린 사랑은 단지 하나의 정서이며, 철학적 왜곡, 심리적 착각, 영적 기만이다. 사랑은 모론시아와 영적 진보의 연속되는 차원들에서 항상 다시 정의(定意)되어야 한다. [196 :3.26]

 

유란시아 책을 읽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자 최소한의 의무는, 참된 사랑의 실천이라고 합니다.

참된 의식만 지니고 있다면, 세상을 비난하지 않더라도, 단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누구나 사랑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지요.

 

사랑은 어려운 일도 힘든 일도 아니에요. 동물적 본능 때문에 잠자고 있는, 우리 각자의 신성한 에너지를 마음껏 활용하여, 우리 자신이 새로운 감성과 이성과 영성으로 깨어나면 됩니다. 유란시아 이야기로 자기 평온과 행복을 즐기면서 현실을 다독거리며 잠들려 하지 말고, 진리의 생생함으로 깨어있기만 하면, 모든 것은 저절로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란시아 책은 현재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미래를 열어주고 안내하는 책입니다. 과거가 어찌 되었건 현재가 어찌 되었건 계속 미래로 나아가라고, 새롭고도 밝고 신성한 길을, 언제까지나 참되고 아름답고 선이 가득한 길을 따라 가라고, 그 길을 보여주고 가도록 이끌어주는 책입니다.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저도 신년 초에는 매년 계획을 세웁니다만, 연말에 결산을 해보면, 사소한 것 외에는 제대로 한 것이 별로 없어서 실망하곤 합니다. 그럼에도 또 계획표를 만들지요. "미래는 선택하는 사람의 몫이고, 결실은 행동하는 사람의 몫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결실이 결심으로 머물지 않도록 힘을 내야겠지요.

모론시아와 영적 진보의 차원에서 재 정의되어야 한다는 사랑이,  실천의 첫째 목표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사트바님의 댓글

사트바 작성일

문명이 피어나고 의식이 높아진 현대 사회라고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상식과 도덕의 수준이 낮아진 듯합니다. 요즘은 수천 년 전의 평범한 가르침이 오히려 더 필요해 보입니다. 일반인들을 교화시키는 설법 중에서 잡아함경을 으뜸으로 여기는데, 득안경의 설법에 요즘 필요한 가르침이 많이 있습니다.

남을 해칠 마음을 버리고,
분노에 얽매이지 말라
원한을 품고 오래 두지 말고
성내는 마음에 머물지도 말라
화가 치밀더라도
그 때문에 나쁜 말을 하지 말라

구태여 남의 흠을 애써 찾지 말고
약점과 단점을 들추지 말고
항상 마땅히 스스로 단속하여
정의로써 스스로 반성하고 살펴라

악한 사람과 함께 있게 되더라도
마치 돌산처럼 강하고 굳세어라

유란시아 책 서두 부분에서 개인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단지 세속적인 선한 나라를 찾아 헤매는 것이라는 말이 기억이 납니다. 하느님이 없이도 도덕적으로 혹은 감성적으로 완벽한 사랑을 성취할 수 있겠지요. 실제로 참된 사랑의 하느님 실체가 없이, 단지 이름을 받들거나 아니면 인간 마음과 감동과 논리에 상상이 더해져 만들어내는 왜곡된 종교가 많다고, 책에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참된 사랑을 이해할 수만 있어도, 현재의 완전만을 찾아다니거나, 몽상적인 미래에 미혹당하지는 않겠지요. 누구나 참된 사랑을 베푸는 그러한 미래가 다가오기를 기원합니다.

(독자게시판은 유란시아 본문을 참조하며 대화를 나누는 곳입니다. 다양한 관심 주제들은 자유게시판에서 공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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