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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를 이기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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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새 작성일18-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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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가 우주에서 가장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이며, 결코 존재하면 안 되는 자라는 결론을 놓고 본다면,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지식과 지혜와 판단력을 가진 중도자들과 천사들이 휘말렸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인간의 시각이나 감정과 지식으로 루시퍼에게서 어떤 문제점을 찾아내고 오류를 발견하고 판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예수님이 그들의 주장을 영원히 잠재우고 신성한 에너지로 퍼부어준 진리의 영이 아니면 그들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더구나 책에서 전하는 이야기를 가지고 본다면, 루시퍼나 칼리카스티아 일당은 그들의 의식과 생각과 마음은 그 드러나지 않은 내면의 추함과는 달리, 겉으로 드러나는 그들의 모습과 주장은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하다는 점에서, 그들의 내면을 판단할 수 능력, 진리의 영을 갖추지 않는 한, 그 어떤 오류도 발견하기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가장 그럴듯한 진리로 받아들이기가 훨씬 쉽다.

 

그들의 말은 우주에서도 반대 논리가 존재할 수 없을 만큼 완벽했고, 그들의 선언은 너무나 활기차서 이야기를 듣는 순간, 모든 존재들이 새로운 희망과 용기로 불타 올랐고,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다워 그 어떤 거짓도 섞일 수가 없었고 , 그들의 호소는 감미롭고 감동적이어서 대부분의 행성 천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이렇게 설명하는 그들의 모습을, 인간의 지성이나 지혜로 그 내면을 파악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그들은 "당신 스스로의 판단을 결코 의심하지 말라"고 자극하면서, 바로 그러한 자만심을 그들이 원하는 미끼로 사용할 것이다. 진리의 영이 알려주는 것은 참됨 이다. 참된 것은 사실이지 생각이나 판단이 아니다. 판단에 의존하지 말라.  

 

그들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특징은 그들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진리를 거부했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진리는 진리일 수가 없다는 자만심으로, 내면 깊숙한 곳에서 하느님을 부정하고 조롱하는 의식이 싹트고, 열매로 나타났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입으로는 하느님을 말하고, 우주의 진리를 말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진리가 무엇인지는 전혀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의 뜻에 대하여 말할 능력이 없다. 자신이 아는 현상만을 진리로 주장하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그들도 하느님의 사랑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오로지 자신의 기쁨을 위한,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사랑일 뿐이다. 자신을 희생하는 위대한 사랑마저도 그 내면의 본질에서는 자신의 고귀한 뜻과 신념을 완성하고 스스로 만족하려는 자기만족과 자기 황홀감을 이루는 사랑일 뿐이다.

 

그들 중의 일부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아버지는 자신의 현실적인 이익과 기쁨과 행복을 얻기 위한 도구일 뿐 하느님의 사랑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다가서 보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들의 내적 의식에서는, 하느님을 자기 자신을 위하여 이용할 대상으로 여기면서 아버지로 말하는 것이지, 그 뜻을 실천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럴 생각도 능력도 없다.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러한 믿음이 살아있어야, 하느님의 단편을 이해할 수 있고 그러한 신성의 근원을 받아들여야만 참된 사랑의 열매가 열리는 것이다.

 

참된 사랑은 우주 공간에 무한하게 깊게 펼쳐져 있는, 그리고 영원하게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주어진 현실에서 주어진 시간과 공간에서, 그 영원과 무한한 사랑을 맛보면서 정지한다는 것은 영원성과 무한성을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시작하여 무한 우주로 상승해야만 한다.

 

인륜과 천륜을 깨달아 실천하면서 질서와 법을 지키고 정의와 불의를 진실과 거짓을 엄격하게 구분하면서, 삶의 기쁨과 행복을 추구하되 즐거움에 바지지 않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이 진리를 아는 사람의 삶이다.

 

자기 이익에 따라서 거짓을 진실로 믿으려 하거나, 자신에게 해가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에서 진실을 부인하거나 외면하거나 방조한다면, 이미 진리의 영은 떠나고 루시퍼의 유혹에 빠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스스로 거짓을 만들어 내고 있다면 이미 루시퍼 추종자이다.

 

다가오지 않은 내일은 선도 악도 아니고 모든 것이 무한하게 잠재되어 있는 것이지만, 현실의 모든 삶은 선이 아니면 악이다. 지나간 과거에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것이 존재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마주하고 있은 지금 당장의 현실에서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것이 다가와서 선이나 악으로 진실과 거짓으로 아름다움과 추함으로 나뉘면서 과거로 흘러라고 있는 중이다.

 

루시퍼도 모든 존재는 무조건 사랑하고 사랑받을 권리를 선천적으로 가지면서 태어났다고 외쳤다. 그리고 모든 존재는 하나같이 동등하고 영원하고 무한한 생명과 능력으로 태어나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하느님의 신성한 뜻이라고 단언했다. 주어진 법과 질서의 기준 안에서, 그리고 절대 평등과 자유와 능력과 행복 안에서 그것을 위하여 모든 존재는 동등하게 형제로서 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196 :3.23
진화하는 마음은 법과 도덕과 윤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증여된 영, 내주하는 조절자는 진화하는 인간 마음에게 입법자, 진실되고, 아름답고, 선한 모든 것의 아버지-근원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러한 계몽된 사람은 종교를 가진다.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길고도 모험적인 추구를 시작하도록 영적으로 장비가 갖추어져 있다.

 

루시퍼의 도덕이 문명의 발달을 위한 주어진 시간과 공간의 완성을 위해 발견하고 성취하는 도덕이라만, 우주의 도덕이 우리의 현실 세게ㅖ부터 우주의 근원까지 하나로 이어지는 도덕이다. 우주가 존재하는 원리이자 질서이다.

 

인간이 반려동물을 실제 가족으로, 진정한 형제처럼 사랑하는 경우처럼, 사랑 자체는 신성하고 순수하고 완전하게 보일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인간의 오만함과 자만심에서 벗어날 방법이 전혀 없는 악하고 공멸하는 사랑이다. 루시퍼 같은 뛰어난 존재도 미처 자신의 자만심을 깨닫지 못하는 그러한 내면의 교묘한 자만심과 이기심은 하느님의 말씀을 완성하겠다는 우주는 영원한 계획에 따라서 나아가고 있다는 신앙의 고백 없이는, 그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소망을 당장 성취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달콤한 아무런 노력도 없이, 단지 마음만 따라주면 모든 것임 이루어지는 루시퍼의 유혹에 빠져있다. 루시퍼는 사람을 끌어들일 능력은 더 이상은 없지만, 스스로 다가오는 사람을 거절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기적 만족, 자만을 위하여 진리를 찾는 사람에게 루시퍼는 하느님보다도 훨씬 감성적이고 현실적이고 적극적이다. 그리고 인간의 오감으로 인지할 수 있고 감등을 느낄 수 있는 그러한 강력하고도 초월적 에너지를 퍼부어줄 능력도 있다.

 

루시퍼가 주장하는 것은 모든 존재에 잠재되어 있는 완벽한 자아 성취이다. 하느님의 진리도 마찬가지로 자아-성취이다. 그러나 그 동기와 목표가 다르다. 하나는 자아의 자아에 의한 자아를 위한 완성이지만, 하나는 인간 자아가 결코 파악할 수 없는 무한하고 영원한 뜻의 그 뜻에 의하여 그 뜻을 위하여 이루는 성취이다. 그리고 그 뜻을 행사하는 주체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132:2.5
선(善)은 도덕적인 자아-실현과 영적 개인성의 달성─내주하는 조절자의 발견, 그리고 조절자와의 정체화구현─이라는 증가하는 해방의 새로운 차원들을 향하여 항상 성장한다. 체험이란, 그것이 아름다움(美)에 대한 깊은 이해를 높이고, 도덕적 의지를 강화시키고, 진리에 대한 식별력을 증강시키고, 자기 동료들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힘을 확대하고, 영적 이상을 고양(高揚)시키고, 시간에서의 최극의 인간 동기를 내주하는 조절자의 영원한 계획과 통합할 때. 선(善)하다, 그러한 모든 것들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는 소망이 커지도록 직접적으로 인도하고, 그로써 하느님을 발견하고 그를 더욱 닮아가려는 신성한 열정을 육성시킨다.

 

인간은 진리의 영의 덕분으로 진실과 거짓에서 진실을 선택할 수 있고, 아름다움과 추함에서 감추어진 진정한 아름다음을 발견할 수 있고, 선과 악 사이에서 달콤한 악의 유혹을 냉정하게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계속되는 혼란에 있다면, 여전히 싸우고 갈등하고 투쟁 속에 있다면, 불완전한 판단으로 후회되고 있다면, 동물의 본성에서 신성한 본성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는 가에 따라서 성장을 할 것인지 주어진 본능대로 삻을 살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 삶의 결과에 따라 영원한 운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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