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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왜 믿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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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새 작성일18-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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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과 갈등, 실망과 분노는 시대를 막론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괴로움이다. 즐거움이란 늘 새롭게 찾아오지만, 그러나 그것은 짧게 지속하다가 점점 시들어간다. 즐거움을 지속할 수 있다면, 그 대상은 늘 새롭게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변화하지 않는 대상에서 늘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려면 대상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늘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늘 새로운 즐거움이 다가올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세상은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자신이 즐겁게 지내려고 존재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즐거움은 결코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찾아가는 것이다. 즐거움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고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 가지 예외가 있다. 가만히 있어도 즐거움이 사정없이 무작정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즐겁지 않으려고 해도 저절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즐거운 시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청소년 시기다.


누구나 한 번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결렬하게 몸과 마음과 의식이 변화하는 청소년 시기를 거친다. 그 시기는 다가오는 세상이 매 순간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청소년기의 황금기이다. 그러한 시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게 된다. 그러한 시기에 청소년들은 엄청난 삶의 가능성과 무한히 잠재된 즐거움과 보람이 성취되는 환희를 깨달아가면서, 자신을 불태울 열망을 품고 열정을 바치려고 미래를 준비한다.

 

이렇게 모든 청소년들은 바람만 불어도 노래와 웃음이 저절로 용솟음치는 짧은 시기를 살아간다. 그처럼 순수한 열정과 싹트고 거대한 감동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솟구치는 이유는 알 수는 없다. 그것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겪는, 생물학적 격동이라는 성장 과정 안에서 이미 짜인 각본에 따른 것인지도 모른다.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필연적으로 거치는, 정서적 발달 과정에서 비롯된 특이한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즐겁고 세상이 온통 새롭고 아름답고 빛나는 나날로 채워지는 이러한 시기만을 살아간다면, 삶의 괴로움은 그리 심각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괴로움이나 분노나 질투와 탐욕과 같은 악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거대하게 다가오는 무한한 가능성 때문에, 아무리 악한 마음도 선한 기대감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고 심각한 갈등이나 파괴의 욕구로 마음을 더럽힐 수가 없을 것이다. 악이 수시로 일어난다 해도, 그처럼 마음이 순수하고 맑은 에너지로 차 있다면, 결코 오염될 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그런 시기는 단 한 번이고, 성인이 되면서 사라진다.

 

이러한 시기를 지나 사회생활로 접어들면, 즐거움은 점점 줄어들고, 삶의 대부분은 심각한 갈등과 속박과 의무과 압력으로 숨조차 쉬기도 힘들어지는 시기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고는 그 한계점에서 더 이상의 탈출구가 없을 때, 진리를 찾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진리는 현실의 한계에서 벗어나도록 깨우치면서, 초월적 의미와 가치와 실체가 있는 새로운 길을 보여주고 괴로움을 잊게 만들 뿐이다.

 

참된 진리라면, 모든 것에서 기쁨을 발견했던 그 시절의 몸과 마음으로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만 한다. 참된 진리라면, 가만히 있어도, 매 순간마다 바람만 불어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그런 새롭고 즐거운 세상이 다가와야 한다.

 

대부분의 진리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위로와 용기로 새로운 힘을 부어주고 있다. 참된 깨우침으로 다가오는 세상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미래를 행하여 힘차게 나아가도록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청소년기의 그때처럼 매일매일 새롭게 변화된 세상이 다가오도록 만들지는 않는다.

 

유란시아 계시는 특별하다. 아마도 우리를 순수하고 열정만이 가득한 그 시절로 변모시킬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유란시아 책에서 말하는 참된 것이란, 그 실체를 우리가 알건 모르건 그것이 그러하다는 것을 말한다.

 

유란시아는 하느님, 우주 아버지의 사랑으로 우리를 깨우쳐주는 계시이다. 그러나 유란시아의 진리는 그렇게 알고 있으라는 단순한 선포가 아니다. 지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논리와 합리와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가 느낄 수 있고 확인할 수 있는 물리적 현상, 마음의 현상 그리고 영적 실체에 이르기까지, 이해가 부족할 뿐, 반박이나 의심할 여지가 조금도 없다. 유란시아 책에서 밝히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신앙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101:0.3
개인성의 신념-신앙, 곧 종교는 믿음 없는 물질적 마음 안에서 잉태되는 논리, 피상적으로 모순되는 절망의 논리를 항상 극복한다. 그곳에는 실제로 참되고 순수한 내적 음성이 있는데, 그것은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을 비쳐주는 참된 빛”이다. 그리고 이 영 인도는 인간 양심의 윤리적 자극과는 다르다. 종교적 확신의 느낌은 감정적인 느낌 이상(以上)이다. 종교의 확신은 마음의 이성 그리고 심지어는 철학의 논리를 초월한다. 종교는 신앙, 신뢰, 그리고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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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만 불어도 참을 수 없이 기뻐하는 청소년들이 언제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즐거움이 가득한 청소년과 지친 어른의 차이는 세상이 아니고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과 생각과 의지의 차이이다. 그러나 실제로 다가오고 있는 세상은, 사실에서나 의미에서 가치에서 서로 다르다. 우주아버지를 신앙으로 믿는 것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청소년도 누구나 같은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삶의 보람과 미래의 가능성을 굳게 믿고 열망과 열정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늘 도전하여 성취를 이루려는 청소년이 있고 그러한 청소년들이 있기 때문에 미래는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평범한 청소년들은 미래에 대한 준비는커녕, 자신의 열정을 바칠만한 특별한 소망도 없이 적당히 잘 짜인 편안한 나날을 기대하면서 미래를 맞이하고 있다. 짧은 즐거움이 지나면., 곧 미래는 피곤하고 험난한 사회로 다가온다.

 

꺼지지 않는 청소년의 무한한 기대와 가능성과 의욕은 스스로 성취한 깨달음이나, 의지에서 나오는 결심이나, 저절로 솟구치는 우연한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 순수한 열정이 마음 가득히 생생하게 살아있을 시기에 들을 수 있는, 실제적이고 참되고 순수한 내적 음성으로 인한 것이다. 순수한 열정으로 이루어진 신앙은, 이 세상을 우주 아버지가 창조하신 그대로, 사랑과 진리와 아름다움이 가득한 그대로 우리에게 다가오도록 할 것이다.

 

신앙은 마음의 자세가 아니다.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내는 결심이나 신념도 결코 신앙이라 부를 수 없다. 의지와 지능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지만, 몸과 마음을 바친다고 신앙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신앙의 확신은 감정적 차원이 아니다. 우주 아버지를 실체로서 깨닫고 신앙으로 내적 음성인 빛으로 이루어지는 신앙은 인간의 논리로 설명될 수 없다.

 

신앙은 오로지 사실에 대한 그리고 실체에 대한, 지극히 당연하고 언제까지나 변할 수 없는, 거의 자연적 반응이다. 

댓글목록

디오니스님의 댓글

디오니스 작성일

좋은 말씀이십니다. 마음이나 생각은 의지에 따라서 변할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어릴 적의 순수한 마음은 찾아보기 힘들고, 사회에 적응하다 보면 의식이 달라져서 어릴 적의 순수의식으로 되돌아가기도 불가능하겠지요. 나쁘게 말하면 순수함이 사라진 것일 수도 있지만 좋게 말하면 그것이 온전하게 성장해가는 삶의 결과이고 체험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현실의 방황과 고뇌가 진리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영원한 행복과 미래에 대한 신앙을 가질 수 없어서 현실 세계에 갇혀서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워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인간으로서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실력으로 우주아버지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자신감을 넘어 오만한 자세겠지요. 신앙은 의지가 핵심이 아니라, 하느님의 실체를 발견할 수 있는 지적, 영적 수용력이 핵심이 되겠지요.

토파즈님의 댓글

토파즈 작성일

신앙의 순수함은 어린아이 마음이에요. 청소년의 마음은 생기가 넘치는 거에요. 어른은 둘다 잃었고요.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갑자기 출현하는 이상한 교리나 철학이나 사이비 종교를 보면,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식으로 갖가지 증거를 제시하며 사람들을 부추깁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신앙도 결심만 굳게 하면 되는 것으로 이해하지요.

참된 진리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에서, 정상적이고 순조롭게 성장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은, 믿으면 된다는 자연의 에너지 법칙과 충성심을 신앙으로 여기기가 쉽겠지요. 

이러한 경우에는, 신앙이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과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에,  신앙의 주인공인 하느님이나 참된 진리가 주체가 되질 못하고 오히려 객체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결심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교묘한 자만심을 깨닫지 못하면, 그만큼 벗어나기도 쉽지 않고요.

논리와 이성으로, 지성과 감성으로, 납득과 이해로 진리에 다가서고 받아들이고 받드는 것이 순서이고, 그 진리에 굴복하고 충성을 바치는 것도 성장의 과정이 될 수 있지만, 그러나 진리를 자신의 체험 안에서 사실로 받아들이고 실체로서 동행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의지는 신앙의 차원에서 새롭게 피어난다고 봅니다.

냉철한 이성과 지성, 풍부한 감성이 진리를 발견하는 핵심이지만, 그것이 순수성을 간직한 채, 자기 이익이나 자아 확인을 위해 쓰이지 않도록 조심한다면, 우주 아버지에 다가가는 순수한 신앙으로 성장하는 것이지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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