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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넘어 지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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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너킥 작성일18-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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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서 떠난다.

절대빈곤이 점점 사라지고 삶의 여유가 생기면, 특별히 떠맡은 일도 없이 즐거운 일을 찾아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아무리 살기 좋은 세상이 와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노는 사람은 없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무언가 활동하지 않으면 반드시 활력을 잃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열심히 활동한다고 해서, 그것이 활기차게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삶의 보람과 가치와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 아주 다르다. 나날이 확장되고 성장하는 풍요로운 삶을 살려는 것이 인간의 목표이지만, 그러한 결실은 무언가에 도전하는 것이 없거나 아무 도전도 다가오지 않는다면, 서서히 무기력의 함정 안에 갇히는 삶이 될것이다. 열심이 움직이지만 의식 자체가 무기력한 사람이 적지 않다. 활기찬 생명이 있고 왕성한 기력이 있는 사람은 외면으로 분간되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움직인다고 해서, 위대하거나 참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유란시아 책에서는 인간의 체험과 성취는 인간끼리 견주고 다투는 것이고, 하느님이 보기에는 정말로 사소하다고 말한다. 본능적인 면에서 배고프면 열심히 움직이는 동물과 인간은 별 차이가 없다. 움직이는 동기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할 뿐이다. 동기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결정적 요소라고 유란시아 책에서는 누누히 강조한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는 인간다운 동기를 가지고 무언가를 하려고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동물다운 동기를 가지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지 스스로 확인해 봐야만 한다. 그것을 스스로 진지하게 살피지 않는다면, 결코 사람다운 동기로 사람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다.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몸이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이고 생각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비록 몸이 마음에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몸이 움직이는 것은 전적으로 마음의 명령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생각에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한편 마음은 생각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이렇게 반응하는 순서로 본다면, 몸에서 마음으로 그리고 마음에서 생각으로 동기가 전달되는 것이 자연 본래의 질서이다. 그래서 청결한 몸에서 맑은 마음이 일어나고 그 마음이 있어야만 빛을 발하는 고결한 생각으로 나아갈 수 있고 마지막에는 생각조절자와 접촉하는 경지까지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생각의 신성한 차원에 접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응의 순서가 아니고, 의지적 행동의 순서로 본다면, 정반대로 생각에서 마음으로 그리고 감각기관으로 명령하고 전달되고 움직이게 된다. 그리고 유란시아 책에서 요구하는 생존의 비밀은, 반응이 아니라 바로 이 삶에서의 행동이다. 삶의 체험은 반응하는 것이지, 행동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꼼짝않고 벽만 바라보는 분도 있다고 하지만, 어떤 생각이든 각자의 자유이다.

 

문제는 생각의 기능은 결코 반응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생각을 짜내기 위해서 지능과 지식과 지혜를 동원하고, 생각의 끝에 이르면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외친다면, 혼자서 축하할 일이지 우주 창조자에게 축하 받을 일은 아닐 것이다.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 우주 공간에서, 그런 경지에 이르고는 황홀한 기쁨에 취하는 분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신성한 지혜이다. 이 세대는 지식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고 있는데 막상 지혜라고 부를만한 것은 거의 없을 지경이다. 아마도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는 것이 지혜의 부재일 것이다.

 

지혜라는 말은, 백과사전식의 지식은 기본이고, 학식과 견문이 넓고 그 위에 깊은 연구와 사색으로 세상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갖주는 것인데, 가끔 철학자의 전유물처럼 말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학문적인 성취와 깨달음을 말하지만, 진정한 지혜와 삶의 철학은 평범한 사람 모두에게 살아있다. 

 

우리 개인도 각자의 삶의 "철학"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에, 표현이야 어떠하든  저마다 하는 일과 일상의 태도에서 지향하는 목표가 있다면, 그것이 곧 삶의 지혜이자 철학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 곧 철학은 모든 사람에게 있고, 모든 사람이 정교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영어로 철학이 Philosophy‘(필로소피)인데, 사랑을 뜻하는 그리스어 필레인과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의 합성어라고 한다. 지혜를 사랑한다의 의미인데 무엇을 알고 싶은가에 따라서, 지혜가 달라지고 인간 모습은 천차만별로 나뉠 것이다.

 

사람이 가장 알고싶은 궁극적인 질문을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는 네 가지 물음으로 요약했다.다. 즉 나는 무엇을 아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 인간이 스스로 내린 결론이 시대를 뛰어넘는 진정한 답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인간의 삶을 까마득한 옛날부터 지켜보는 초인간적 존재의 사랑넘치는 조언이 시대를 뛰어넘는 답이 될 수 있을까?

 

열심히 파고들어, 나름대로 해답을 찾아 나가는 것이 지혜의 일차 목적이고, 궁극의 목적은 그 해답을 위하서 실제로 살아가는 것이다. 한 평생을 질문만 하다가 어떤 해답도 제대로 검증해볼 시간이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요즈음 사람들은 남을 비난하고 무시할 때, 흔히 철학이 없다느니 개념이 없다느니 무뇌아라는 말까지 ㅎ라지만, 실제로 살아가는 지혜의 실천이 없다보니 자기가 아는 지식과 생각, 곧 반응으로 마음을 거거쳐 두뇌까지 도달한 지성과 감성과 이성의 자기 영역에서 양보없는 싸움을 하게되는 것이다.

 

생각에서 마음을 거쳐 묨을 움직인 사람은, 그리고 그 생각이 지혜의 샘에서 출발한 결과라면 남을 비난하고 무시하고 경시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지혜는 그 어떤 경우에도 감추어진 진실과 실체를 드러내어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근원적 고찰이 없으니 행동은 자기중심적이 되고, 피해를 최소화하고 행복을 극대화하는 생각으로 에너지를 집중하게 된다. 그건 사람다운 본능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이상적인 국가로 소개하는 이웃 행성에서는 철학적 사고가 주요한 목표가 된다고 한다. 그 곳에는 인간관계가 가진 중요성, 실체와 가치에 대한 참된 깨달음과 삶과 우주 운명을 함께 생각하는 통찰력을 지혜로서 추구한다고 한다. 

 

71:7.2
이상적인 국가에서는, 일생을 통하여 두루 교육이 계속되고, 그리고 때로는 철학이 그 시민들의 주요 추구 대상이 된다. 그러한 공화국의 시민들은, 인간관계의 의의(意義), 실체의 의미, 가치의 고결함, 삶의 목표들, 그리고 조화우주 운명의 영광들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의 향상으로서의 지혜를 추구한다.
71:4.4
참된 형제신분의 출현은,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짐을 기쁘게 감당하는 상태에 어느 사회 계층이 도달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황금률을 실천하기를 실재적으로 원한다. 그러나 허약한 자들 또는 사악한 자들이,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善)에 대한 봉사에 헌신함으로써 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부당하게 그리고 터무니없이 역이용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한, 그러한 이상적인 사회는 실현될 수 없다. 그러한 경우에는 오직 한 가지 과정만이 실재적으로 일어나는데; 그 “황금률들”은, 평화를 선호하는 그들의 성향을 부당하게 이용하거나 아니면 그들의 진보된 문명을 파괴시키고자 할 수도 있는 미개한 이웃들에 대항하여 적절한 방어를 유지하는 한편, 그들의 이상(理想)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진보적인 사회를 건설하게 만들 수 있다.

 

댓글목록

디오니스님의 댓글

디오니스 작성일

경기가 안 좋으면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하고 마음의 여유도 없어집니다. 물리적 사회 환경이 심리적인 에너지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새로운 글들이 줄어든 것 같아서 진리를 탐구하는 평화로운 정신세계도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 때문에 활기가 살아나질 못한다는 느낌도 들고요.

신나는 일이 벌어지면 저절로 힘이 나서 같이 동참하고 그러다가 산술적 합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에너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지요. 문제는 사람의 관심을 매혹시키는 신명 나는 "일"은 점점 사라지고, 사람의 감각이나 값싼 감정만을 이끌어내는 "사건"만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지요. 아마도 말씀하신 대로 반응--> 마음--> 생각의 순서대로 자연적 본능에 삶을 맡기는 방향으로 사람들의 의식이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매몰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생각--> 마음--> 사실적 실체를 확인하고 만들어내는 창의성을 되살리려고 유란시아 계시가 내려온 것이지요.

생각의 힘으로, 인간관계의 의의, 실체의 의미, 가치의 고결함을 체험하도록 이끄는 것이 참다운 지혜이자 철학의 힘이라는 글이, 미망에서 헤매는 현실에 밝은 빛처럼 우리를 깨워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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