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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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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경곤 작성일1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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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알고 받아들이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습니다. 믿음과 신앙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었음을 알고 받아들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도 예수님이 인간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라고 말했기 때문에, 만물에는 창조자가 있다는 논리적 타당성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비유적인 표현으로 이해하면서, 그 말을 받아들이고, 자신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수긍 합니다.

하느님이 세상은 물론 자신과도 직접적 관계를 맺고 있는, 어떤 살아있는 초인간적 실체로 깨닫고 확신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면, 그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초월적 본성을 체험적으로 확인하는 것을 신앙이라 말합니다. 그래서 신앙은 믿음에서 시작되기는 하지만, 삶의 현실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실성, 곧 창조자나 아버지라는 진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증거들이 나타나게 되고, 그러한 실질적 체험을 통하여 의식이 점점 성장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궁극적으로는 체험에 뿌리를 둔, 실체적 의식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이성이나 오성이나 지혜의 권역을 벗어나는 영역입니다. 따라서 결국에는 생각이나 마음이나 지능과 상관없이 물리적, 정신적, 영적인 체험을 통하여 부인할 수 없는 실체로, 하느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받아들이고 그 바탕 위에서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어떤 미개한 시상이나 어떤 무지한 환경에서도, 똑같이 영적 자녀로 탄생되어 성장하도록 이끄는 원동력입니다.

101:2.13
종교의 실현은 위대한 학문이나 명석한 논리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또 앞으로도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영적 통찰력이며, 그리고 그것이 어째서 세계적으로 가장 위대한 종교 교사들의 일부, 심지어는 선지자들까지도, 때때로 세상의 지혜를 그처럼 적게 소유해 왔는가 하는 바로 그 이유이다. 종교적 신앙은 배운 자들에게나 배우지 못한 자들에게나 똑같게 유용한 것이다.

그래서 신성한 하느님의 본성은, 오직 신앙을 통하여 체험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특징은 유란시아 책에서 신앙이 무엇인지 신역 성경이 잘 표현하고 있다고 말에서 보듯이 성경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신앙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표현되고 있는 성경의 말은 신앙을 통해서 마음속에 그리는 것의 실체가 사실로 드러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99:5.8
신앙이 오직 이상적인 가치들에 대한 파악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신앙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의 증거이고 바라는 것들의 실체라고 선언하는 신약 성서의 정의에 의해 잘 묘사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한글 성경은 믿음과 신앙을 같은 말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히브리서에 나오는 신앙의 특징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에서 이 말이 나오는 히브리서 11장 1절 의미를 검색해보면, 거의 대부분의 해석들이 믿기만 하면, 언젠가는 이루어지니까 흔들리지 말고 믿음을 지키라는 마음의 각오나 단호한 결심이나 어떤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바라는 것들의 실체라고 억지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성경의 이 구절이 참으로 해석하기가 어렵다고 고백하는, 영적으로 뛰어난 목회자들도 있기는 하지만 극히 드물고, 거의 대부분은 마음의 결심과 각오의 수준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바라는 것을 기도의 대상으로 설명하고 진리의 대상이라는 사실에 조금도 다가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면서 하느님을, 믿기만 하면 뭐든지 이루어진다는 무속신앙의 신과 별 차이가 없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결심이나 신념이 아닌, 신앙으로만 가능한 하느님과의 실체적 체험은, 아무리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는 차원에서 유래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영적 자녀로 태어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나 생각이나 능력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가 없는 기적입니다. 그리고 그 기적은 하느님이 아버지라는 신앙이 없이는 나타날 수 없습니다.

비록 신앙은 반드시 지적, 감각적 또는 정서적인 계기나 생각이나 마음의 작용에서 시작되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그러한 생각과 마음의 차원을 넘어서 실체에 대한 의식이라는 싹이 돋아내고 성장하는 것은 신앙의 영역입니다. 일단 신앙의 경지에 들어오면, 믿음의 영역과는 전혀 다른 실체들이 존재하고, 그에 따라 삶의 모습은 인간의 지위나 자격과는 상관없이 끊임없이 새롭게 활성화됩니다.

신앙은 지식이나 깨달음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실체적 삶을 통하여 하느님을 점점 더 알게 됩니다.

인간이 인지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마음, 생각, 의식의 인간적인 영역에서, 하느님이 존재하는 초인간적인 영역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이 아니라 신앙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신앙은 생각이나 각오의 실천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생각이나 각오의 체험입니다.

신앙의 영역으로 들어와야만, 물질적 실상들에 대한 초물질적 사실성과 초월성을 체험하고, 나아가서는 하느님에 대한 신성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 믿음의 차원에서 정체되어 있을 때, 사람은 필연적으로 지적, 논리적, 이성적, 과학적 분석과 확장과 논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은 결심이나 각오와는 달리 광범위한 의미가 담길 수도 있기 때문에, 믿음이란 용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믿음에 신앙과 마찬가지로 신성한 본성과 속성을 알려는 열망이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너무나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서, 시작되는 기본 바탕이 될 수는 있지만, 하느님의 사실성 안에서 자신과의 관계를 체험하는 그러한 성장으로 나아가는 것을 오히려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101:8.1
믿음은 그것이 삶에 동기를 부여하고 삶의 양식을 실현할 때 신앙의 차원을 달성해 왔다. 가르침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믿음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신앙은 확신도 아니고 신념도 아니다. 마음의 상태는 그것이 실재적으로 삶의 양식을 지배할 때에만 신앙 차원을 달성한다. 신앙은 참된 개인적 종교 체험의 살아있는 속성이다. 사람은 참된 것(眞)을 믿고 아름다움(美)을 동경하며 선한 것(善)을 존경할 수 있지만, 그것들을 경배하지는 않는다; 구원하는 신앙에서의 그러한 태도는, 이들 개인화되고 그리고 더욱 더 무한하게 되는 그 모든 것이신 오직 홀로이신 하느님에게 중심을 두고 있다.
   
무엇보다도 믿음에는 종교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종교는 신앙 없이는 나아갈 수도 성취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종교이건 단체의 종교이건 집단의 종교이건, 종교적 행위가 없이는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신앙의 결실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종교에 대한 중요성은 유란시아 3부에 자세하게 계시되고 있습니다. 종교가 온갖 부작용을 일으키면서 갈등과 혼란의 근원이 되어왔다는 현재까지의 정의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점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개념이 새롭게 정의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을 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는 모든 초월적 의식은 종교에 대한 새로운 개념 안에서 자라날 것입니다.

댓글목록

네오님의 댓글

네오 작성일

기독교에서는 성경을 함부로 훼손하면 안 되는 신성한 책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유대인이 경전을 조상 모시듯,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극도의 존경심으로 받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무조건적인 권위와 두려움이 깔린 상태에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강조한다면, 아무리 새로운 깨우침을 전파하고 새로운 진리를 알려줘도 유란시아 책에서 말하는 하느님에 대한 참된 신앙을 갖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유란시아 책을 읽지 않고는 계시 진리를 신앙으로 삼을 수가 없으리라고 봅니다.

결심으로 진리를 발견하고 체험하는 것이 아닌 데도, 결심이라는 마음의 상태를, 진리의 실제 체험으로 혼동하곤 합니다. 마음공부를 하는 분들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봅니다. 학문이나 지적 탐구로 진리를 공부하시는 분들이, 그런 지적 만족에 걸려서, 더 이상 나아가질 못하고 정체를 겪는 것이지요. 초월적 실체가 사실이라는 것을 점점 체험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신앙이 가지는 특징 중의 하나겠지요.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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