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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지혜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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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너킥 작성일19-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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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믿지 않으려는 이유는 많겠지만, 대부분은 아마도, 믿을 이유가 없다는 자신감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자신감은 삶을 씩씩하게 헤쳐나가 모든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하겠다는 의지가, 알게 모르게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지는 물리적 세상이라는 한정된 현실 세계에서는 바람직한 삶의 태도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자신감은 어떤 제한된 범주 안에서는 '완전하라'는 하느님의 뜻을 성취하려는 실질적인 의지의 실천이기도 하다. 현실 속에서 매 순간의 완전을 달성한다고 해서, 그것이 시간을 초월하는 그러한 완전에 이르는 것은 아니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완전'을 목표로 매 순간을 불태우는 그 자체로 본다면, 참되고 아름다운 신성한 의지라고 봐야 한다.  

 

유란시아 책에서는 현실에서의 완전 성취와 하느님의 뜻에 따른 완전 성취를 다르게 설명하지만, 근원적인 진리를 계시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방법을 자세하게 예시하거나 밝히지는 않는다. 각자에게 주어진 신성한 판단을 믿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현실을 열심히 살면서, 누구나 인정하는 완전을 양적으로 그리고 질적으로 이루면서 성장하고 있는 사람을, 단지 하느님을 믿지 않거나, 진리에 관심이 없다고 해서, 보잘것없는 삶으로 멸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름대로 성공을 이룬 과학자나 철학자나 저작가들이 주장하는 무신론은, 최선을 다해 성취한 인생에서의 승리를 발판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감에서 나오는 확실한 이유와 논리가 잘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제시하는 무신론은, 그들처럼 부와 명예와 권력을 꿈꾸는 어린아이나 청소년에게는 확실한 주장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인간을 신처럼 여기면서 본받으려고 할 때, 우상이 되는데, 우상은 주어진 삶을 살다가 헛되게 사라진다는 진리에서 본다면, 자신이 지닌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 고등 동물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만물의 영장으로서 최고의 행복을 누리며 삶을 사는 것이 인간의 존재 이유라고 만족한다면, 그것은 무신론에 빠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과학적 사실과 이 세상에서의 무한한 행복을 제시하면서 신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무신론자들의 교묘한 언변에, 하느님에 대한 진리를 가지고 맞대응하는 것은 거의 무모한 짓이다. 하느님의 진리는 사실로 증명되는 실체가 아니라, 믿음으로 확언되는 실체이지 때문이다.

 

102:7.6
하느님을 아는 개별존재는 현대 시대의 미신, 전통 그리고 물질주의적 성향의 미로들 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어려움을 눈이 멀어 보지 못하거나 장애물을 마음에 두지 않는 자가 아니다. 그는 이러한 모든 방해물에 봉착해 왔고 그것들을 극복하였으며, 그것들을 살아있는 신앙으로 이겨내었으며, 방해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 체험의 고지(高地)를 달성한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을 깊이 확신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는 것에 대한 반대 주장들을 끌어 모으고 그 어려움을 증폭시키는 사람들의 그 다양성과 교묘함 때문에 확실성에서의 그 어떤 느낌들을 강력히 주장하기를 두려워한다. 결점을 찾아내거나, 질문을 던지거나, 반대 주장을 제기하는 것에는 그 어떤 아무런 지성의 깊은 통찰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 질문에 대답하고 이들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에는 마음의 눈부신 재기(才氣)가 요구된다; 신앙의 확실성은 그러한 모든 피상적인 논쟁들을 다루는 데에서 가장 위대한 기법이다

 

죽음 이후는 아무것도 증명된 것이 없다는 사실에서만 본다면, 초물질 세계를 인지하거나 하느님을 믿을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을 경멸하거나 멸시할 이유가 없다. 사람이 자신이 뛰어났다고 이유로 동물을 멸시하지 않듯이, 그러한 능력이 결여된 사람을 다른 차원으로 보면서 인정해 주어야만 한다. 

 

멸시는 자신과 견주어서 보잘것 없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서, 인간이 스스로를 동물과 비슷한 처지로 여기지 않는 한, 동물을 경멸하지 않는다. 동물의 세계를 구경하고 관찰할 수는 있지만 휴식을 위한 것일 뿐, 동물의 세계를 삶과 연관 지으려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인간임에도 약육강식의 동물적 본능으로 세상을 정복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인간으로서는 경멸을 받아야 한다.

 

유란시아 책에서는 동물과 인간의 구분을 일곱 보조 마음 영의 기능으로 설명하는데 경배와 지혜의 기능이 활성화되는 차원을 인간으로 분류한다. 경배는 초월적 존재, 하느님을 사실로 믿을 수 있는 최소한의 느낌이고, 지혜는 사물과 현실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이치와 원리를 발견하고 이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뛰어난 지식과 지혜로 착각한다. 동물에게 뛰어난 지식을 나타날 수 있지만 지혜의 기능은 존재할 수 없다. 동물은 반복되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파악하고 추론하고 판단하는 높은 지능이 언제든지 가능하지만, 그것은 지혜도 아니고 통찰력도 아니다. 그것은 반복되는 물질 현실에서 성공하는 기법을 깨우칠 뿐이다.  

 

무신론자가 세상을 정복하는 놀라운 지적 능력과 수준을 달성한다 해도, 그것은 수단과 방법의 차원일 뿐, 지혜의 차원이 아니다. 지식이 저절로 지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지혜는 무신론자의 주장에서 결점을 찾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주장의 본질이 어떤 차원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통찰력, 그 자체를 말한다. 

댓글목록

에리카님의 댓글

에리카 작성일

잘은 모르지만 인간이 지니고 있는 마음 영에서 4번째가 지식의 영이고 5번째가 지혜의 영이라고 기억합니다. 동물에게는 4번째까지만 있다고 하고요. 동물에 있는 지식의 영과 인간에게 있는 지식의 영을 같다고 말하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지식의 내용이나 깊이에서 동물과 인간은 비슷할 수가 없습니다. 책에서 인간이나 동물이나 모두 지식의 영이 있다는 것은 혼란이 됩니다. 아마도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생명체에서 기능하는 보조 마음 영을 말하는 것이라서, 우리가 보통 지식인이라고 말할 때의 지식과는 다르다는 의미가 다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광범위한 지식에 통달한 사람을 보통 지식인이라고 말하는데, 이렇게 말할 때에는 지식이 오히려 지혜와 같은 의미로 보입니다. 지식이 단순히 수동적인 반응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라면 좀 다르게 봐야겠지요. 무신론의 지식은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동적인 것 같습니다. 요즘 시대는 지식과 지혜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책에서 말하는 경배 차원을 넘는 지혜는 일반적 의미보다는 좀 더 높은 의미가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댓글의 댓글 작성일

능동적인 지식이라는 말이 공감이 가네요. 그러나 아무리 지식이 발달해도 지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지식은 그 정도가 높거나 낮거나, 양기 많거나 적거나, 분야가 좁거나 넓거나 상관없이 차이가 없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사람이나 동물이나 지식의 영은 같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지능이 다를 뿐이지요.

동물은 낮은 지능이라는 유전적 한계에 있고 인간의 지식은 단지 높은 지능으로 인한 것이지, 지식의 영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지능은 생물학적 유전인자로 결정되는 것이라서, 우수한 지능때문에 달성하는 높은 지식은, 낮은 지능에서 달성하는 낮은 지식과 기능적으로는 다를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같다고 봐야 합니다.

높은 지능으로 달성하는 높은 지식은 높은 대상을 식별할 수 있다는 점만 다를 뿐, 지식 자체가 다른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컴퓨터가 방대한 지식을 대신하여 보관하고 수시로 제공하는 요즘 들어서, 더욱 잘 증명되고 있습니다.

지식은 동물이나 인간이나 지능에서 취급하는 대상만 다를 뿐 모두 같은 것입니다. 지식은 생존을 위한 유용한 도구일 따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무신론이 지식을 기반하고 있다는 말씀은 전적으로 공감이 갑니다.

102편의 3장 지식, 지혜, 그리고 통찰력을 읽어보시면 많은 참고가 될 거예요. 그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102:3.5] 과학, 지식은 사실 의식으로 이끈다; 종교, 체험은 가치 의식으로 이끈다; 철학, 지혜는 조화-협동 의식으로 이끈다; 계시(모론시아 모타의 대용품)는 참된 실체의 의식으로 이끈다; 반면에 사실과 가치 그리고 참된 실체에 대한 의식의 조화-협동은, 바로 그 개인성의 생존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과 함께, 개인성 실체, 존재의 최고점에 대한 인식을 구축한다.

토파즈님의 댓글

토파즈 작성일

풍부한 지식이 지혜로 나아가는 요소이지만, 통합되지 않으면 스스로 진리 의식을 파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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