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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실패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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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새 작성일20-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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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원래 실패하지 않는다. 실패할 수가 없도록 제조되어 있다. 실패는 스스로 실패하려고 하기 때문에 실패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실패를 계속한다. 자신이 실패를 스스로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에 자신에 대해 세상에 대해 괴로워하며 살아간다.

실패의 반대는 성공이다. 수많은 성공자들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성공 비결을 내어 놓기 때문에 넘칠 정도로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들의 성공이 역경을 이겨내고 세상을 빛내는 값진 승리임에는 틀림없겠지만, 진정한 의미와 가치가 있는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성공으로 인하여 삶의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면 그것은 분명히 성공이겠지만, 제 아무리 놀라운 성공을 이룬 사람도 그렇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목표가 되는 성공은 모두 상대적인 것이다. 상대적인 세계에서 절대적인 성공은 어떤 경우에도 실제로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 절대적인 성공이 있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존재로 태어나는 순간 결코 실패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인간은 하느님이 만든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느님이 인간만을 창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착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실패하기로 작정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착각이다. 인간이 사는 행성과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행성이 어떻게 다를 것인지를 상상할 수 있다면 그 이유를 발견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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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보조 마음-영들이 동원되는 직계의 그리고 새로운 체제가 존재하게 되었다. 우리는 기대감으로 충만 되어 있었다; 오랫동안-기다려왔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유란시아에서 의지적 창조체들을 진화시키려는 우리들의 길고 긴 노력의 실현이 문턱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62:7.3
 

일곱 보조 마음-영들이 동원되는 직계의 그리고 새로운 체제가 존재하게 되었다. 우리는 기대감으로 충만 되어 있었다; 오랫동안-기다려왔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유란시아에서 의지적 창조체들을 진화시키려는 우리들의 길고 긴 노력의 실현이 문턱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느님의 창조 행위에서 우주의 모든 행성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과 같은 의지 생명체가 존재하는 것이 생명체 창조의 최종 목표이다. 인간 존재가 탄생되었다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가 완료되었다는 것이고, 하느님이 실패했다고 의심한다는 것은 인간의 절대성을 깨닫지 못하는 지적 수준에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것은 동물과 인간 사이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몽롱한 의식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아직 인간이 태어나지 않은 동물 세계만이 존재하는 행성과 인간이 있는 행성의 차이가 어떠할지 상상해볼 수 있다면, 스스로 실패하고 있기 때문에 실패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성공하지 않아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한다.

자신이 실패를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거나 그런 말에 분노한다면 실패를 거듭하려는 신념을 가지고 굳게 버티고 있다는 증거이다. 하느님이 인간을 만든 것에는 실패가 있을 수 없다. 실패를 느낀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 되기를 부인하는 것에서 유래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이제는 실패를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패를 실천하면서도 그것에서 벗어나지를 거부한다. 죽을 때까지도 상대적인 성공을 증거로 내세우면서, 자신은 성공을 위해서, 혹은 성공을 이루면서 열심히 살았다고 항변하면서 실패를 실천했다는 사실은 극구 부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느님이 자신을 창조한 그 의미와 가치를 정말로 알고 또 증명할 수 없다면, 동물의 존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생명체의 삶에서는 동물이나 인간이나 똑같이 반응한다. 그러나 인간이 없는 행성에서의 생명체는 무의미하지만 인간이 있는 행성에서 생명체 의미는 심오하다. 생명체 탄생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이 완료되었다는 의미가 들어있고 또 그 계획이 진행되고 있음이 증명되고 있다. 생명 계획의 완료가 어떤 의미이며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동물이 아니라면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느님의 성공의 증명하는 삶이다. 인간은 스스로 미지의 길이라는 이유로 인간으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기를 스스로 거절하고 있기 때문에 실패를 실천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실패를 괴로워하며 어두운 길에서 빛을 발견하기를 거부한다.  

 

성공을 이루지 못한 현실은 괴로워할 수 있다. 그러나 ​실패를 괴로워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현실에서의 성공은 그 어떤 성공자도 성공이라고 말할 수 없다. 모든 성취는 부분적이고 상대적이다. 스스로 성취했다고 의식하고 만족하는 순간 어둠의 길에서 벗어나는 그 마지막 경계선에서 되돌아가게 된다.  

 

성공의 만족과 보람은 새로운 용기와 도전의 모티브일 뿐이다. 그리고 용기와 도전은 만족과 보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만족과 보람은 어떤 현실의 어떤 환경에서도 가능한 살아있는 생명체의 본능이지만, 새로운 목표와 용기와 도전은 인간만이 가능하다.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아무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물며 잠을 자면서도 생각하는 기능은 멈추지 않고 꿈을 꾼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 안에는 하느님의 단편인 생각 조절자가 있기 때문에 사람은 현실의 거듭된 좌절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는 무의식을 가지고 있고, 유한한 인간에게 무한한 실체가 내재한다는 이 선천적인 모순이 갈등을 일으킨다고 말합니다. 그 무한한 잠재력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실패를 반복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실패는 인간만이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성취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실패를 이겨내고 무언가를 달성하려는 것은 그 자체로 영적 성취가 시작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물질적 성취에서 멈추는 바람에 갈등과 실패가 반복되고 영적 성취의 길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 길을 밝히는 것이 진리의 빛입니다. 스스로 진리의 빛을 만들며 길을 비출 수는 없습니다. 그런 빛은 편견과 아집의 패망의 길을 비추겠지요. 빛은 눈 앞에서 눈을 비취는 것도 아닙니다. 눈 앞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진리도 의식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왜곡이겠지요. 지적 진리는 길을 밝히는 영적 진리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 삶의 모든 길을 사라지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머리 위에서 길을 가도록 비취는 진리를 만나고 있을 때, 실패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디오니스님의 댓글

디오니스 작성일

수호천사들은 자신이 돌보고 있는 인간 주체를 순탄한 환경에 처하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곤경에 처하도록 이끈다고 합니다. 물론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역경을 만나도록 애쓰고 그것을 통하여 잠재된 능력을 실재화하도록 돕는 다고 하지요. 이것이 개인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역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실패하거나 포기하면 결국에는 개인성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유란시아 책에서 개인성이 없으면 동물로 본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패할 수 없다는 의미는 개인성이 생존되는 경우라고 봅니다.

토파즈님의 댓글

토파즈 작성일

성취는 상대적이어서, 실패는 성취하지 못한 것이 아니고 도전을 포기하거나 성취에 만족하며 머무는 거에요.

로터스님의 댓글

로터스 작성일

성취의 대상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실패의 의미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진리 탐구에서 성취는 아마도 종교적 진리일 수도 있고 철학적 깨달음일 수도 있습니다만, 현실에서의 성취는 좀 다른 의미일 수도 있겠지요. 사람마다 자신이 목표로 정한 것을 참된 것으로 주장하기 때문에, 서로 양보 없이 경쟁하기도 하고요.

경우에 따라서는 쟁취하고 이루는 것이 성취가 아니고 오히려 가진 것을 버리는 것을 성취라고 말합니다. 그런 분들은 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목표를 정하면서 이를 성취하려고 합니다. 결국 버리는 것도 실체이고 성취하는 것도 실체라고 한다면, 그 실체가 무엇인지 먼저 저마다 확실히 해야만 하겠지요.

유란시아 책에서는 진정한 실체는 영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실체라고 알고 있는 물질적인 것은 영의 그림자라고 정의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과 물질 사이에 있는 실체를 혼이라고 하니까, 결국 물질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최상의 실체는 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혼적 실체를 어떻게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지 그 방법과 과정과 대상은 무엇인지 저마다 정하고 열정을 쏟아야겠지요.

혼의 생성 과정에서 고통, 슬픔, 역경, 기쁨, 만족, 행복들이 따라오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실체이겠지요. 목표나 방향을 정할 때 혼이 생성될 수 있는 참된 실체를 찾는 것이 당연히 들어있다고 봐야겠지요. 종교를 물질적 성취에 위해 진리를 열심히 믿는다면, 여전히 실패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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