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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을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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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경곤 작성일21-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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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밝고 아름다운 미래만을 맞이하는 청소년 시기를 제외한다면 사람들은 세상을 무한이 아름답고 선한 세상으로만 보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 아름다운 시기조차도 꿈과 희망 대신 힘들고 좌절을 겪는 청소년이 있지는 하지만, 모든 일에서 스스로 책임을 맡아야 하는 성인이 되어 겪는 것과 비교한다면 청소년 시기의 고민은 아름다운 과거의 한 부분들이지요.

그렇게 쓰라린 역경의 시간은 결국에는 아름다운 새로운 탄생을 위한 인내와 도전의 과정으로 나타납니다. 누에고치가 나비로 창발 하는 것은 나비가 되기 전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듯이 젊은 시절의 꿈과 희망은 자연스럽게 안타까움과 초조함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늘 즐거운 시간을 목표로 살아간다면 희망은 오히려 초조함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행복을 파괴하는 주범이 되겠지요. 요즘 그런 삶을 사는 사는 분이 많아서인지, 희망 고문이라는 비웃음도 종종 있는 세상이 되었지요. 희망이 고문이 된다면 오로지 현실의 쾌락을 목표로 삶을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소망은 비록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사실적 실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슴에 간직하고 믿고 다가가는 것이지요. 실체가 아니라면 헛된 꿈에 지나지 않겠지요. 그렇게 소망은 사실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사실임을 아는 것이 지식입니다. 그래서 지식은 현세적인 실체를 바탕으로 미래까지 확신하는 실질적인 근원인 것이지요.

현실에서 발견하는 참됨이나 아름다움도 엄밀하게 말한다면 감성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지성에 바탕을 둔다고 봐야겠지요. 대상을 잘 알지 못하면서 느끼는 감동은 촉감이나 후각처럼 단순하게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반응이지만, 실체에 대한 깊은 지적 이해에서 나오는 감동은 일시적 반응이 될 수 없는 것이겠지요.

정보를 수집하여 모은 것은 지식이 아니고, 정보를 바탕으로 실체성을 파악하는 능력이 지식입니다. 그래서 지식인이란 사실이 사실임을 명확하게 아는 사람을 말합니다. 신성한 지식, 곧 진미선에 대한 지식도 막연한 감동이 아니라, 사실성과 실체성을 명확하게 알고 그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하겠지요.

2:7.6
 
지적 자아-의식은, 진리의 아름다움, 그것의 영적 본질특성을, 그 개념에 대한 철학적 일관성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언제까지나-계시는 진리의 영의 어김없는 반응으로 말미암아 더욱 확실하고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행복은 진리를 인식함으로부터 생기는데, 이는 진리가 활동으로 옮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는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망과 슬픔은 실수 위에서 일어나는 데 그것은,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체험 속에서 실현되어질 수 없다. 신성한 진리는 그 영적 향기에 의해 가장 잘 알려진다.

미래에 대한 어떤 사실적 실체를 아는 것은, 현실에서의 사실을 확실하게 아는 것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현실에는, 순간에만 존재하는 사실도 있고 시간이 변해도 존재하는 사실들이 있는데, 이것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진리를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아름다움처럼 오늘 일시적으로 있지만, 내일과 모래에도 여전히 새롭게 나타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이 진리입니다.

그래서 지금 있는 참된 사실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분명하게 잘못된 것이지만, 그에 대한 자세한 배경과 동기와 피치 못한 사정이 있으면 잘못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실 잘못된 것과 참된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잘못되지 않은 것이 참된 것이 아니라, 참된 것은 잘못된 것과 상관없는 전혀 다른 실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잘못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그것을 참된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한 용서와 포용은 진리를 발견하려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세, 곧 사랑의 실천에서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용서가 사랑이 될 수 없듯이, 그것이 진리가 될 수는 없겠지요. 진리에 대한 사실적 실체를 알지 못하면, 미래의 소망은 실제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진리는 감동이 아닙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 선함 그리고 그에 대한 사실적 실체를 아는 지식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진리를 깨닫는 능력, 참된 사실을 분별하고 아는 능력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얼마나 그 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가의 차이가, 여전히 계속되는 아름다움을 일상의 삶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를 말해줄 것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어제가 아닌 오늘이고, 그렇게 오늘보다 내일에 다가오는 세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내일은 의미 없는 내일이 아니라, 조바심과 불완전과 도전으로 다가오는 내일입니다.

댓글목록

로터스님의 댓글

로터스  작성일

이루고 싶은 강렬한 소망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은 불꽃처럼 일어나는 그러한 희망이 잘 눈에 뜨이질 않네요. 실제로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활발하게 불타오르고 있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인지 둘 중의 하나겠지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인터넷을 통하여 바라보는 전 세계적인 현상 같기도 합니다.

과학의 발달로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가 확보되면, 나머지 물질적 풍요는 삶의 의미나 행복에 양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라서, 일생을 바쳐서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잘 안 생기는 것이겠지요. 부귀영화가 양으로 평가되는 세상에서는 질적 성취를 추구하려는 소망은 노력과 희생이 커서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물질주의가 주는 치명적인 악이지요.

소망을 가지기 위해서는 생존을 결정짓는 절박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절박함 안에서 나비가 탄생될 수 있는 것이지요. 과학 발달로 물질적으로 풍부할 때, 절박하게 추구해야 할 무언가가 있어야만 합니다. 유란시아 책에서 주는 목표는 하느님의 자녀로 완전을 이루는 삶이겠지요. 진미선이 되는 사실을 발견하고, 힘차게 전진하면 신성한 사랑이 그것을 이루도록 동행합니다.

네오님의 댓글

네오  작성일

책의 설명에 따르면 하급 동물의 지능 체계는 마음의 4번째 진화 단계인 지식의 영이 작동을 하고 5번째 단계인 조언의 영이 기능하면 비로소 동물적 군생 본능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6번째와 7번째 단계를 넘어 진리의 영과 생각조절자가 깃드는 인간에게, 지식은 기초 중의 기초겠지요. 지식 없이 판단하고 행동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요.

지적인 배움이나 체험적 깨달음이나 핵심은 지식입니다. 핵심 요소에서 시작되어 지혜를 거치고 의식화되어 깨달음의 실체가 되고, 그것이 세상에서 빛을 발하면서 한편으로 영적 진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것이겠지요.

세상을 설명하고 증명하는 학문이 모두 다 중요하지만, 영적 실체와 직접 연결되는 가장 가치 있는 지식은, 예수님을 아는 것이라고 계시합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불멸의 생애에 이르는 비밀이 담긴 글이라면, 예수님의 신앙과 예수님의 이상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참되고 아름다운 지식이 될 것입니다.

196 :1.3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그의 종교적인 신앙을 개인적으로 공유하고, 사람을 위하여 사심-없이 봉사한 주(主)의 일생의 영(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예수가 믿었던 것을 찾아내고, 그의 이상들을 발견하며, 그리고 그의 드높여진 일생의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분투하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지식 중에서, 가장 커다란 가치가 있는 것은 예수의 종교적 일생과 그가 어떻게 그 삶을 사셨는지를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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