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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 책에서 영감을 받은 독자분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삶을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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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새 작성일22-11-06

본문

사람들은 위대한 영웅이나 의식을 깨우친 수많은 현자들의 삶을 존경하며 그들을 본보기로 삼으면서 자신도 그러한 위대한 삶을 살려고 한다. 혹자는 인류 문명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업적을 이룬 위인들의 삶을 존경하고 따르려고 결심하기도 한다.

누구나 어린 시절부터 이와 비슷한 소망을 가지고 성장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의 냉정함과 극복하기 어려운 난관을 만나고, 또 당장 해결해야 할 현실적 문제에 얽히면서, 위대함에 대한 순수한 소망은 보류되고 현실의 뒤로 물러난다. 이룰 수 없는 꿈이나 로망으로 남는다.

값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난관을 극복하고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실패의 참혹한 결과가 너무 끔찍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급한 현실 문제와 씨름하면서 꿈을 잊은채 성장하는 것이 보통이다.

영원한 진리를 선포하는 성자들의 삶은 엄청난 감화력과 영광스러운 업적으로 인하여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위인들보다도 위대한 삶의 본보기로 존경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예수님의 삶은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신 하느님의 아들이기에, 그리고 죽음 이후의 부활 때문에 종교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신성한 삶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의 진리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삶을 살려는 소망이 그 어떤 삶보다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삶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것이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삶이라고 믿는 경우가 지금까지도 더러 있다.

예수님의 삶을 따라서 살겠다는 소망은, 예수님의 삶의 모습과 삶의 자세와 그 행적을 따르는 것이라서, 사람들은 그러한 어릴 적 본인의 혹은 부모의 소망에 따라서,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신부나 목회자의 길을 가기도 한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유란시아 책 4부에는 예수님의 삶의 모든 행적이 상세하게 나와 있어서 예수님의 삶에 따라 종교인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아주 엄청난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것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리를 선포하는 종교 스승의 삶을 예수님의 삶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진리를 선포하는 삶은 하나의 직업이지 그 자체가 예수님의 삶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삶은 직업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고, 가르침과는 별도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대하는 의식으로 그 일생이 이해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바울이나 후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인류를 구원할 위대한 메시아로 여기고 진리를 전파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로 불리는 것도 진리를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고 말하고 있다. 메시아도 하나의 역할이지 하느님이 인류를 위하여 제시하는 참된 삶의 본보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망은 성취나 업적 보다는, 위대함이나 어떤 불후의 영향력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공생애 이전에 목수로 일하셨고. 아마도 계속 목수로 일했어도 그의 삶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일생을 성취했을 것이다. 다만 자신의 역활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종교 스승을 택하신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의 사제들과 싸울 필요가 없는, 의사나 학자나 어떤 다른 직업으로 살았다 해도, 하느님의 진리를 선포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생생한 교훈을 얼마든지 후대에 남길 수 있었을 것이고, 부활과 오순절 진리의 영도 부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예수를 삶을 본보기로 그의 삶을 살겠다는 소망은 목회자나 신부나 선교사 같은 종교 지도자만 성취하는 길이 아니고, 종교적인 삶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따른다는 결심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지 유란시아 책에서 그 답을 발견할 수 있다.

[196:1.3]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그의 종교적인 신앙을 개인적으로 함께 나누며 공유하고, 사람을 위하여 사심-없이 봉사한 주(主)의 일생의 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는 예수가 믿었던 것을 찾아내고, 그의 이상들을 발견하고, 그리고 그의 드높여진 일생 목적의 달성을 위해 분투하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지식에서의, 가장 위대한 가치가 있는 것은 예수의 종교적 일생과 그리고 그가 어떻게 그것을 살았는지를 아는 것이다.


사심 없이 봉사한 일생은 종교에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직업이든지 자신의 이익이나 부귀영화를 위하여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참된 것과 아름답고 선한 것을 위해 모든 힘을 쏟는다면, 종교인이 아니더라고 사심 없이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러한 의식으로, 그러한 영으로 삶을 사는 것이 예수의 삶을 따르는 것이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참된 의미와 가치를 자신의 영적 아버지인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철저하게 이해하는 것인데, 예수님은 하느님이 이 세상을 헛되게 창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굳게 믿으면서,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의미와 그 뜻을 진리로서 받아들이며 살았다.

하느님의 진리 안에서 인간 삶의 진정한 가치, 곧 이상을 발견하고, 목표로 정하고, 온 힘을 쏟아부으며 우주를 창조하고 인간을 하느님의 영적 아들로 탄생시킨 이유를 하느님의 뜻으로 이해한 것이다. 우주들의 우주를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창조하고 필사자 인간을 자녀로 삼고 있는 것인지, 예수님이 찾아낸 진리가 유란시아 책의 1부와 2부의 글들이다.

인간은 자신이 바라고, 하느님이 기대하는 모든 것을 성취할 능력과 축복을 받았다는 진리, 그리고 하느님은 인간을 언제까지나 이해하고 돌보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유란시아 책의 3부의 글들인데. 예수님은 바로 이 진리를 자신의 삶을 통하여 실천하고 확인하며 증거 하는 삶을 성취하신 것이다.

유란시아 책 덕분으로 예수님의 삶은 우리가 따라 할 수 있는 신성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하느님의 뜻은 예수님의 직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느님의 뜻은 종교에 전념하는 종교인의 직업을 지정하는 분이 아니다.

우주 삼라만상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태어나고, 만물에 하느님의 뜻이 스며들어 있다면, 어느 특정한 직업이나 삶의 자세를 하느님의 뜻이라고 여기는 것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될 것이다. 하느님의 뜻은 모든 자녀들이 자신과 같이, 우주 만물을 다 이해하는 그러한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 완전을 이루는 여정이, 물질 세상에서 완성하고 더 높은 차원으로 계속 나아가는 상승의 여정이다.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유란시아 책을 보기 전에는 그 어떤 신학자도 예수님의 신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으로는 하늘의 권능과 이적을 일으키고 부활하신 사건을 예수님의 신성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신학자들이 연구하고 정의하는 신성은 인성과 대비되는 신, 즉 Deity에 대한 것이지, 유란시아 책에서 말하는 Divinity도 아닙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참되고 신성한 본성은 직접 마주했던 열 두 제자들의 고백이 한계일 것입니다. 그 이후의 사도들이나 신자들에게는 예수님의 권위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지위가 예수님의 신성을 표현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이나 신성에 대한 개념이 따로 존재할 수 없었던 기독교 신학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결국 한계에 부딪쳤기 때문에 유란시아 책에서 자세하게 밝혀주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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