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최근 게시글      최근 코멘트
[유란시아 책에서 영감을 받은 독자분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물질적 행복과 초물질적 행복

페이지 정보

작성자 코너킥 작성일23-08-30

본문

현대는 점점 과학 만능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아마도 빠른 시일 내에 모든 나라는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고 인류는 나름대로 만족할만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극소수의 비정상적인 나라가 잠깐 동안 존재할 수는 있겠으나 온 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세상에서는 그러한 비상식적인 국가는 오래갈 수 없다.  

 

생존이라는 기본적인 삶의 투쟁에서 벗어나, 높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시대는 과학의 덕분으로 빠르게 다가오겠지만, 그런 시대에서 누구나 삶의 기쁨이나 행복을 누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생존의 공포가 사라진 문명국가나 물적적 풍요가 넘치는 시대에서도, 도전해야 할 목표가 전혀 없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갈등과 투쟁은 생존의 공포 못지않게 치열하다. 이때부터는 지나친 탐욕이나 오로지 자신을 돋보이려는 극도의 이기심이 악의 근원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악은 사라지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결정되는 행복에서 자기 자신의 만족을 굳게 지키려면, 상대성이 존재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고립된 생각과 삶의 의식에서 살거나, 행복감을 떨어뜨리는 어떤 우월적인 상대도 빼앗거나 파괴하거나 무시해야만 한다. 행복을 지키려면 생존과 관계없이 이기적 의식을 포기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법으로 제재하지 않으면 어떤 범죄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래서 법이 허용하는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다. 법을 지키면서 탐욕을 채운다는 것이 아니라, 처벌받지 않는 한계까지 불법을 자행한다는 의미다, 선진국에서 변호사가 인기 있는 직업이 된 것은 이런 불법자들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증거이다.  

 

물질적으로는 고도 문명을 이루지만 이런 비인도적인 쾌락과 행복을 탐닉하는 풍조는 점점 늘어난다. 이것을 방지하는 유일한 길이 물질적 행복에서 초물질적인 행복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실제로 초물질적인 행복은 물질적 행복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지만, 물질적 반응에 온통 습관화된 사람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초물질적 행복에는 물질적 비교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잘것없는 물질이나 무소유와 같은 텅 빈 욕망에서도 지극한 행복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것은 깨달음과 신앙에서 싹트는 초물질적 의식에서 이루어진다.  

 

사람의 의식은 거의 대부분 뇌과학에서 설명하고 파악하는 물질적 의식이다. 초물질 의식은 반응의 대상이 전적으로 오감을 벗어나는 영역이므로, 뇌과학으로는 접근이나 이해나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개관적인 과학이 이나라 주관적인 철학과 신학의 영역이다. 거기서 우리 안에 내재된 영과의 연결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103:9.5

종교 체험이 비록 하나의 순수한 영적인 주관적 현상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체험은 우주의 객관적 실체의 가장 높은 영역들을 향한 긍정적이고도 살아있는 신앙 태도를 포옹한다. 종교 철학의 이상은 인간으로 하여금 우주들의 우주의 무한하신 아버지의 절대 사랑에 분별불가하게 의존하도록 이끌 수 있는 그러한 신앙-신뢰이다. 그러한 참다운 종교 체험은 이상적인 욕구의 철학적 객관화를 훨씬 초월한다; 그것은 실재적으로 구원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그 자신을 오직 파라다이스에 계시는 아버지의 뜻을 배우고 행하는 것만으로 관여한다. 그러한 종교의 특징들은: 최근의 신(神)에 대한 신앙과 영원한 구원에 대한 희망 그리고 사랑인데, 그 사랑은 특별히 자기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비물질적 세계로 사람을 초대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행복의 기준을 깨닫도록 이끄는 것이 종교이다, 그러나 종교가 선을 가장한 권력과 통제의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종교끼리, 종파끼리 우월성을 따지면서 치명적으로 싸우고 종교 자체의 생존을 위하여 인적 자원과 물질적 자원에 쟁탈전을 벌리고 있다. 이것은 모든 상대방이 종교와 관련이 있는 일이어서, 초물질적 생각이고 의식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상은 초물질적 대상을 물질세계로 끌고 내려와서 마찬가지로 물질세계의 법 안에서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형시켰던 당시의 종교인들이 가장 알기 쉬운 사례일 것이다. 그들의 행실에서 종교적인 모습은 하나도 없었다. 초물질적인 모든 행복을 땅바닥으로 끌어내려 물질세계의 법칙과 갈등과 이기심과 탐욕만을 만천하에 보여주었을 뿐이다. 지금도 이런 행실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참된 종교를 왜곡하고 추락시키고 있다. 진리는 사라지고 교리만 남아 있고 교리의 실천을 진리의 실천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103:9.6

신학이 종교를 지배할 때 종교는 사라지며; 그것은 생명 대신에 하나의 교리가 된다. 신학의 임무는 개인적인 영적 체험에 대한 자아-의식을 촉진시키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신학은 종교의 체험적인 주장들을 정의하고 설명하며 해석하고 정당화시키려는 종교적 노력을 구성하는데, 그것은 모든 것을 고려해 봤을 때, 살아있는 신앙에 의해서만 확인될 수 있다. 우주에 대한 보다 높은 철학에서는, 이성의 지혜가 신앙과 결합하게 된다. 이성과 지혜 그리고 신앙은 사람이 이룰 수 있는 가장 높은 인간적 달성이다. 이성은 인간에게 사실들의 세계, 사물들을 가르쳐주며; 지혜는 그에게 진리의 세계, 관계들을 가르쳐주며; 신앙은 그를 신성의 세계, 영적인 체험으로 들어가도록 한다.

 

점점 더 세상은 편하고 즐거움이 가득한 삶이 되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 흐름에 습관적으로 마음과 생각을 맡기다 보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 의지가 있어도 영적 힘이 없다. 영적 힘은 수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쏟지 않으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식과 지혜와 논리적 즐거움에 빠져서 초물질 세게의 아름다움으로 착각하면서 행복에 빠져있다면 심리적 행복은 얻겠지만 영적 행복은 자라지도 않는다. 믿음으로 초물질적 행복에, 진지한 열망에, 꾸준히 충성과 전심으로 도전하는 것이 영적 행복을 찾고 즐기는 사람의 모습일 것이다.​


물질적 행복과 초물질적 행복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현대인들의 특징은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반감을 느낀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그 이유를 분석하고 매일 해결법을 발표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러한 풍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 종교에서도 그 해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뭐든지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그러면서 타인의 개성을 객관적인 관점에서 존중하면서 그것을 선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자기에게 행복이 되는 것만 받아들이는 어떤 후천적인 본성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물질 만능 시대가 주는 자아상실의 서곡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계시로 깨어나지 않으면 그 편안하고 즐거운 음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네오님의 댓글

네오 작성일

지금은 정말로 신학이 종교를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신학을 전공한 분들이 각 종교를 이끌고 나가면서 사실상 진리를 전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에게 살아있는 신앙이 있는 분들이 얼마나 있을지요.
영적 체험마저도 종교 지도자들이 가르치고 강조하는 초현실적 체험을 영적 체험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서, 참되고 진정한 행복을 이루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유란시아한국 소개 문의 | 요청  (웹관리자) : sysop@urantia.or.kr © URKA 상단으로
  모바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