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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 책에서 영감을 받은 독자분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계시가 전하는 두가지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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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창파 작성일24-02-07

본문

​유란시아 계시는 모든 인간이 불멸의 존재로 다시 태어나고 영원한 생명을 성취하기를 바라는 글입니다. 이것은 계시가 없다면, 인간은 단지 물질세계의 모든 생명체의 운명인 필사적 존재로 살다가 소멸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전제로 합니다.

불멸의 생존을 계시하는 진리는 매우 상세하고 강력하고 이성적이고 감동적이고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지혜, 논리,  증거,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떤 존재도 거부하거나 반박할 수 없는 초물질적 권위와 신성이 담겨 있지요.

계시된 진리를 요약하면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하느님의 신성이 내주하고 있는 우주 아버지의 자녀이기 때문에 누구나 우리의 의지와 힘으로 생존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간은 생존을 방해하는 거짓과 악이 실존하는 세상에서 살아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진리 같지만, 실제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주 아버지의 자녀라는 사실은 수많은 종교, 철학, 심지어 과학에서도 이미 충분하게 납득되고 있는 진리입니다. 이것은 물질 의식의 한계를 조금이라도 넘어서서 추론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자 확신으로 각자의 잠재의식 안에 살아있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자신도 모르게 하느님을 찾는 경우가 바로 사람의 잠재의식에는 이러한 살아있는 진리의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핵심이기도 합니다.

한편 개인의 자유 의지는 인간이 하느님의 잠재적 자녀라는 또 다른 증거가 되는데, 이 의지는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특권이기에, 우주 아버지의 사랑, 힘, 진리보다도 우선하는 것이지요. 그에 따라서 개인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라는 진리를 잠재 의식에서 몰아내어, 하느님에 대한 어떤 의식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상식적으로 생각핟다면, 자신이 언젠가는 불멸의 존재가 되고 또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운명을 거부할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온 세상이 어떤 심각한 악이나 어둠 속에 갇혀있지 않는 한, 인간 개인의 생존을 위하여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요. 그리고 지금 이 시대가 돌이킬 수 없는 어둠에 잡겨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계시가 내려온 배경은 신비로울 수 있습니다.

만약 계시가 우리 생존을 위하여 특별하게 준비된 진리의 깨우침이라면, 우리는 인간의 지혜로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치명적인 위험 속에서 살고 있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새로운 시대적 진리가 필요합니다. 치명적인 위험이 유란시아 계시가 새롭게 밝히는 악의 정체일 것입니다. 우리가 새롭게 깨닫고 경계하지 않으면 우리는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 고도 문명 속에서 삶을 즐기고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지적 동물 생명체에 불과할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진리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스스로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개인의 신성한 자유의지로 신성을 거부하고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하느님이라고 여기거나, 아니면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과 주장을 했던 우주적 존재가 루시퍼입니다. 천상의 높은 존재인 루시퍼의 이러한 자기 주장이, 아주 작은 잘못된 생각에서 시작되어, 악으로 발전되고 결국에는 우주의 죄악을 범하게 된 것이지요.

67:1.4
죄를 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주 철학적인 견지에서 본다면, 죄(罪)는 조화우주 실체에 대하여 알면서도 저항하는, 한 개인성의 태도이다. 실수는 실체에 대한 오해나 왜곡으로 간주될 수 있다. 악은 우주 실체들에서의 부분적인 실현 또는 우주 실체들에 대한 잘못된 적응이다. 그러나 죄는 신성한 실체에 대한 의도적인 저항─영적 진보에 반대되는 쪽으로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며, 반면에 사악한 불의는 인정된 실체에 대한 공개적이고 끈질긴 항거로 이루어져 있고 조화우주 광기(狂氣)에 가까운 개인성 집대성-해체활동의 그러한 정도를 의미한다.

루시퍼는 여러 증거를 내세우며 우주 아버지의 존재를 부인하는 근거를 주장하며 완전한 독립을  선포했습니다. 물론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는 태생적으로 어떤 것도 거부할 특권이 있기에 그런 주장은 누구에게나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아버지가 자녀를 종으로 여기기 않는 어떤 세계나 우주나 아들은 아버지를 거부할 수 있지요. 만약 아버지를 거부하는 것이 아들의 소원이라면, 아버지가 아들을 잊는 것이 아들을 위한 사랑일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유란시아는, 루시퍼가 관리하는 우주에 속했고, 루시퍼의 대리자인 사탄의 유혹에 우리의 영적 에너지를 보호 육성하는 행성 영주가 동조하게 되었지요. 수많은 천사와 유란시아의 초물질적 존재들이 이 하늘의 반란에 동참했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지혜와 역량을 지닌 이들 초인간 존재들은, 인간을 훨씬 초월하는데에도 루서퍼의 우주 아버지로부터의 해방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본다면, 인간의 지혜나 능력으로 판단하는 것은 거의 블가능할 수 있겠지요.

루시퍼의 해방의 핵심은 우주 아버지 없이 우리 스스로의 능력으로 절대적 자아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명령도 "내가 완전하듯 너희도 완전하라'는 자아의 완성입니다. 동기와 목표에서만 다를 뿐입니다. 루시퍼의 자아 완성은 각 개인의 자아에 의한, 자아를 위한 완성이지만, 하느님의 명령은 인간 자아가 파악할 수 없는 무한하고 영원한 세계에 초대되고 그곳에 우리를 위해 준비된 절대적 차원의 자아 완성입니다. 루시퍼는 진리를 교묘하게 왜곡한 악으로 변조시킨 것이지요.,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선과 악의 삶의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간 삶의 위대한 역사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인간 의식을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67:0.1
유란시아에 있는 인간 실존과 연관된 문제들은, 과거의 위대한 신(新)시대의 지식 없이는 납득될 수 없으며, 그 중에서도 행성의 반란의 발생과 결과들은 더욱 그렇다. 비록 이 대격변이 유기체의 진화 과정에 심각한 방해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사회적 진화와 영적인 발전 과정을 현저하게 변경시켰다. 지구의 전체적인 초(超)물리적 역사는 파괴적인 이 재난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루시퍼에 동조했던 천사들이 그의 사악한 주장에 동조하였다면, 인간의 지식이나 생각으로 인간의 능력으로 루시퍼의 악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악은 너무나 달콤하고 매력적이고 즐거움을 주는 것이기에, 그리고 천사들을 사로잡았을 만큼 너무나 완벽하고 논리적으로 위안을 주고 사랑이 넘치는 진리로 보이기에, 거부할 수가 없었겠지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시간을 초월하는 천사보다 지혜로울 수는 없지요. "지금 이 순간의 너의 모습은 있는 그대로 절대적으로 이미 완전하다. 문제는 외부의 심리적 압박으로 그리고 생물학적 한계로, 네가 그 진실을 깨닫기를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네가 이미 완전하다는 진실을 믿으라"라는 달콤한 속삭임은 역경에 빠진,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에게는 속박을 벗어날 빛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진리가 아닙니다. 각자가 그 위치에서 절대적으로 완전하다는 것은 현 위치에서 정지하도록 강요하는 궤변에 지나지 않습니다. 생명의 근원을 알지 못하면서 인간이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근원은 우주 아버지의 영역입니다. 인간이나 초인간이나 스스로를 절대적 존재로 확신한다고 해서, 저절로 현실적 한계를 정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와 자연은 개인의 믿음과는 상관없이 우주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생정하게 변합니다. 스스로 선포하는 자신만의 진리는 자기 영광에 스스로 취하는 자기기만입니다. 그것은 죄가 잉태되는 정신적 중독이지요.

111:6.2

자연본성의 정복을 달성하고 자신의 자아의 초월하는데 필요한 용기는 자아-자부심의 유혹에 쓰러질 수 있는 용기이다. 자아를 초월할 수 있는 필사자는 자기 자신의 자아-의식을 신(神)화 하는 유혹에 굴복할 수도 있다. 필사자 딜레마는 그가 자연본성에 노예가 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독특한 해방─영적 선택과 행동의 자유─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중 사실에 있다. 사람은 물질적 차원에서는 자연본성에 예속된 자신을 발견하며, 반면에 영적 차원에서는 자연본성과 모든 일시적이며 유한적인 것들에 대하여 승리한다. 그러한 역설은 유혹, 잠재적 악, 결정에 있어서의 잘못들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자아가 의기양양해지고 오만해 질 때, 죄는 진화할 수 있다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 우주 아버지의 명령이라면, 또한 이을 거부할 의지가 우리에게 있다면, 그것은 명령이 아니라 권유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가 전지 전능하신 분이라면, 아버지의 명령은 부탁이자 자녀를 위한 사랑일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처음과 끝이 다를 수 있고 왜곡되고 변질될 수 있지만, 아버지의 본성이 온통 영원하고 무한하다면 그 사랑은 언제까지나 변화되지 않는 사랑이겠지요.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고, 부담을 주는 일도 아니고, 의무를 지우는 것도 없습니다.

사랑은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에 어떤 조건도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오직 기쁜 일입니다. 그럼에도 신성한 사랑을 거부하는 것은, 사랑을 인간의 왜곡되고 변질의 가능성이 있는 그러한 사랑으로 이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성한 사랑을 깨닫도록 이끄는 것이 예수님의 영원한 진리의 빛입니다. 진리는 참되고 아름답고 찬란하고 완벽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모두 변화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변화하지 않는 것은 내재적인 것들입니다. 내재된 신성을 인지하고 반응하는 길은 예수님이 살아가신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밝혀져 있습니다. 예수님을 대신하여 진리의 영이 지금 우리 곁에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계시가 전하는 두가지 진리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루시퍼의 거짓 진리는 단지 자신이 아는 시공간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서 모든 존재가 조화를 이루고 서로 힘을 합하여 완전한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었지요. 루시퍼의 도덕은 모든 존재가 완전한 평등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자는 현실적 이상세계의 도덕성입니다. 겉보기에는 매우 그럴듯합니다.

현실의 비도덕이나 악의 굴레에서 고통받거나 현실이 바뀌기를 갈망하는 사람에게는 달콤하고 갈증이 해소되는 진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루시퍼는 우주나 시간의 근원이나 신성의 원천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에는 모든 존재가 시간의 함정 안에 영영 갇히는 악을 파트리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것이 죄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각 우주 공간의 완전무결성이 우주의 절대적 본성이라고 스스로 우주를 정의했었지요. 우주의 탄생과 질서에 역행하고 우주라는 공간체를 스스로 파멸하는 사악한 범죄인 것이지요.

아마 지금도,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우주 아버지의 절대적 뜻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언젠가는 반드시 절대적 존재가 되도록 운명되어 있다는 루시퍼의 주장을 그대로 외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동물적 본성이 진리를 영을 거부하도록 이끌기 때문입니다. 루시퍼 반란이 최종 판결되면 영적 회로가 복구되고 신성한 에너지가 오랫동안 오염되어 있던 에너지를 말끔하게 밀어내리라 봅니다.

토파즈님의 댓글

토파즈 작성일

자존감이 없으면 최소한의 자부심이 있어야만 해요. 과도하게 가공된 자부심이 진리를 길을 끊어버려요.

네오님의 댓글

네오 작성일

하느님의 뜻은 사랑에서 비롯되어 사랑을 통해 깨닫고 사랑을 통해 결실을 맺습니다. 사랑의 대상은 진미선의 실체들이지요. 신성한 본성으로 모든 개인성들에 의해서 내재되어 있는 것이 실제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루시퍼가 주장한 불완전을 극복하여 완전을 이루자는 것은 존재의 이유가 불완전의 극복이라는 의미라서, 우주 아버지의 절대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절대 신성이 아닌 현실적 악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실체와 반대되는 악이라는 그림자를 도덕과 진리의 빛이 드러나는 발화점으로 여기는 것이지요.

우주 아버지의 신성한 실체와 언제까지나 마주하는 영광스러운 삶의 도전을 루시퍼는 차단하고 다른 존재들의 모험의 기쁨을 강탈한 것이지요. 계속 신성을 성취하는 삶 대신에, 고통과 불완전에서 해방되는 삶을 완전이라고 속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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